[이사야서 해설]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지만”(7,1) “당장 국가 안보상의 위기가 닥친다고 합시다. 미국에 의지할까요, 중국에 의지할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다면 다음 질문은 건너뛰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셨다면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십 년 후에도 그 나라에 의지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십니까?” 이런 질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셨다면 이사야서 7장의 가르침을 이미 절반은 이해하신 것입니다. 이사야가 “우찌야 임금이 죽던”(6,1) 기원전 740년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면, 그 후 5년 정도 지났을 때에 아하즈가 임금으 로 즉위합니다. 이사야서 해설을 시작할 때 시대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지만, 이제 아하즈가 임금이 된 직후의 국제 정세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당시 근동의 역사를 좌우하던 나라는 아시리아였습니다. 한마디로 아시리아는 힘이 센 나라였습니다. 이사야서에서도 아시리아 군대에 대하여 “그들은 암사자처럼 포효하고 힘센 사자들처럼 함성을 지른다. 으르렁거리다 먹이를 잡아채 끌어가면 아무도 빼내지 못한다”(5,29)고 말합니다. 특히 기원전 745년에 티글랏 필에세르 3세가 임금이 된 이후로, 아시리아는 무섭게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리아의 잔인함에 관한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는 전설적인 내용일 수도 있지만, 아시리아에는 이 지역에서 최초로 직업 군인들로 된 기병 부대가 있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 다른 나라들과는 수준이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기원전 738년에 아시리아가 시리아(아람)와 북 왕국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이스라엘 임금 므나헴은 상당한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아시리아의 입장에서, 주변의 작은 나라 하나를 더 무너뜨리는 것은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종속을 인정하고 조공을 잘 바치면 살려 두었습니다. 조공을 안 바치면 그때부터 단계적으로 주권을 빼앗고 완전히 예속시켰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조공을 바치는 입장에서는, 목숨만 부지해도 감사하다며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나라들이 연합하여 아시리아에 맞서려고 시도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임금 페카 “아람 임금 르친과 르말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페카가”(7,1) 손을 잡은 것도 아시리아에 맞서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래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우방이 아니라 국경을 맞대고 계속 싸우던 관계였습니다. 아시리아라는 더 강한 공동의 적이 나타났기에 갑자기 같은 편에 서게 된 것뿐입니다. 그런데 작은 나라 둘이 힘을 합쳐도 아시리아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남 왕국 유다를 끌어들이려 합니다. 이들은 요탐 시대에도 유다를 반(反)아시리아 동맹에 가담시키려 했지만, 요탐은 거절했습니다(2열왕 15,37 참조). 유다는 아직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지 않았고, 조공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굳이 남의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 후 이스라엘에서는 프카흐야를 거쳐 페카가 임금이 되었습니다(이스라엘 왕국의 끝 무렵은, 25년 동안 6명이 왕위에 오른 어지러운 시대였습니다). 유다에서 아하즈가 임금이 되자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다시 유다를 설득하려 합니다. 아하즈가 이에 응하지 않자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유다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유다로 쳐 올라가 유다를 질겁하게 하고 우리 것으로 빼앗아 그곳에다 타브알의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자”(7,6). 아하즈를 몰아내고 자기들 편이 되어 줄 다른 사람을 유다의 임금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사야서 7장의 배경인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입니다(기원전 736-734). 유다 임금 아하즈 이렇게 시리아의 르친과 이스라엘의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7,1) 올라왔을 때 유다 임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이제 스물이 갓 넘은 젊은 임금 아하즈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요구를 거절했으나 그들의 침입에 맞설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르친과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지만 정복하지는 못하였다”(7,1). 영화를 볼 때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옆에서 자꾸 앞으로 전개될 줄거리를 얘기하면 재미가 떨어지지요. 그런데 이사야서의 저자는 일부러 그렇게 합니다. 예루살렘이 결국은 함락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미리 말해 줍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믿었고, 우리도 그것을 믿어야 하고, 아하즈는 그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듯 임금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렸다”(7,2). 아하즈는 불안합니다. 이사야가 아하즈를 찾아가 만난 곳이 “윗저수지의 수로 끝”(7,3)이라는 것도 불안한 아하즈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윗저수지”는 기혼 샘에서 나온 물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 물을 끌어다 썼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될 때 버틸 수 있으려면 그 저수지에 물이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적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그 저수지를 차지하면 예루살렘은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맙니다. 아하즈가 저수지를 살핀다는 것은 이미 머릿속으로 전쟁을 계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순간에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임금 앞에 나타납니다.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7,4).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아하즈에게 전하신 말씀입니다. 참 비현실적인 말씀 아닐까요? 아하즈는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방책을 원합니 다. 저수지의 방비를 확인하고, 전쟁에 대비하려 합니다. 7장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전쟁 때에 아하즈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는 아시리아에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시리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거슬러 일어나려 할 때, 유다는 그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보다 훨씬 더 강대국인 아시리아에 손을 내밉니다. “저는 임금님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시어, 저를 공격하고 있는 아람 임금과 이 스라엘 임금의 손아귀에서 저를 구해 주십시오”(2열왕 16,7). 이것이 아하즈가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 3세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는 자기 발로 찾아가 아시리아에 굴복했고, 많은 조공을 보냈습니다(2열왕 16,7-10). 티글랏 필에세르 3세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시리아의 제단을 본뜬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티글랏 필에세르 3세는 기꺼이 아하즈의 요청에 응답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과거에도 아시리아는 이미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침입했고, 그들을 굴복시켜 조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시리아를 거슬러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니까요. 기원전 732년에 티글랏 필에세르 3세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켰고, 10년 후인 기원전 722년에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도 함락됩니다(그때의 아시리아 임금을 성경에서는 살만에세르 5세라고 말하고, 아시리아 실록에서는 사르곤 2세라고 말합니다). 예언자 이사야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아하즈는 어디에 의지해야 했을까요? 아시리아에 의지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었을까요? 물론 그렇게 해서 유다 왕국은 멸망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유다 임금이 자신을 아시리아 임금의 “종이며 아들”이라고 말했다면, 이미 유다의 운명은 기울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이사야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7,4)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아하즈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시리아도 믿고 의지할 대상은 되지 못합니다. 사십 년이 지나기 전에, 시리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는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가 통치하고 있는 유다를 공격할 것입니다. 아시리아가 유다의 요청을 들어준 것은 유다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시리아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서였습니다. 너무나 뻔한 국제 관계를, 아하즈는 왜 보지 못했을까요?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하즈에게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7,9)고 말합니다. 전쟁 속에서 하느님을 믿으라는 이사야가 더 비현실적입니까, 아니면 강대국 아시리아의 도움을 받으려는 아하즈가 더 비현실적입니까?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6년 6월호(통권 483호), 안소근 실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