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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이사야서 해설: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52,13)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100 추천수0

[이사야서 해설]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52,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3). 근래에 들어 여기저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시편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보면 이런저런 의문들이 떠오릅니다. ‘요즘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잘되는 데에 관심이 많은가?’ ‘이 시편 구절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저 구절을 적어 놓고 하는 일이 잘되지 않을 때는 무슨 생각을 할까?’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52,13)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는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52,13)는 말로 시작합니다. 넷째 노래는 주님의 종의 노래들 가운데서도 가장 무거운 본문입니다. 성금요일에 읽는 독서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노래가 “성공을 거두리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시편 1,3에 나오는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와 같은 단어입니다. 주님의 종이 하는 일이 과연 잘되고 있는 걸까요?

 

먼저 노래의 짜임을 잠깐 짚어 봅시다. 첫머리에 “나의 종”이라고 하니 여기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입니다(52,13-15). 하느님은 종이 겪었던 고통과 성공을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우리”로 표현된 다른 사람들이 종을 바라보며 말합니다(53,1-10). 그들은 처음에는 종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종이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느님께서는 종의 미래를 다시 확인해 주십니다(53,11-12).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로 여겼다’(53,4)

 

이제부터는 본문을 순서대로 읽지 않고, 풀어 헤쳐서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단, 하느님은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52,13)고 말씀하십니다. 결과가 좋으리라는 뜻이겠지요. 적어도 끝에는 이야기가 잘 풀리리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본문은 줄곧 종의 고통에 대해 말합니다. 지금 주님의 종의 모습을 보니 그는 사람들이 질겁할 만큼 모습이 망가졌습니다(52,14). 그는 병에 걸렸고(53,4), 찔렸고, 으스러졌고, 상처를 입었고(53,5), 학대받고 천대받았고(53,7),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기까지 했습니다(53,8).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판결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악인들과 함께 묻혔습니다(53,9). 그러니 그를 보는 이들은 당연히 그를 사람들 앞에서나 하느님 앞에서나 죄인이라 여겼고, 그렇기에 그가 벌을 받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욥이 자녀와 재산을 모두 잃고 병에 걸렸을 때 욥의 친구들은 분명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일 거라고, 하느님께 그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청해야 한다고 고집하지요. 그것이 전통적인 인과응보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굳게 믿는 이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죄가 많아서 그런 일들을 당한 것이라고, 천벌을 받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님의 종을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53,4)로 여깁니다.

 

어떻습니까? 고통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가 겪는 고통이 천벌이라고, 악한 짓을 저질러서 벌을 받는 거라고 모욕을 당하는 사람. 그의 삶이 “성공”으로 보입니까?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 같습니까?

 

 

“의로운 나의 종은”(53,11)

 

그러나 그는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도 그가 폭행을 저지르거나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53,9). 하느님은 그를 “의로운 나의 종”(53,11)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자신의 죄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런데도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53,9)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53,12) 헤아려졌습니다. 전통적인 도식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는 고통에 대하여 전대미문의 설명을 내놓습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53,5)입니다. 그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그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기꺼이 당했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53,7) 그가 벌을 받았기에 오히려 벌을 받아야 했을 우리는 평화를 얻었고, 그가 상처를 받았기에 우리는 나았습니다(53,5).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구절,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의 가장 특징적인 구절은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라는 말씀입니다(53,11). 그는 “속죄 제물”(53,10)이라고 일컬어집니다. 무죄한 종이 고난을 당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속(代贖)입니다. 고통받음으로써 그는 자신의 죄를 갚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갚았습니다.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53,12).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53,1) 악인이 천벌을 받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인이 다른 사람, 아니,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았고 더구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53,6)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왜 “그를 으스러뜨리고자”(53,10) 하셨는지, 그의 억울한 죽음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죄악을 짊어지는 것이 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가 “많은 이들을 의롭게”(53,11) 할 수 있었는지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 “들어 보지 못한 것”(52,15)입니다.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사도 8,31)

 

저도 설명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먼저 다니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무궁히 빛나리라”(다니 12,3).

 

‘정의로 이끌다’는 53,11의 ‘의롭게 하다’와 같은 단어이고(같은 어근의 같은 변화형), 구약성경에서 이 두 본문에서만 사용됩니다. 다니엘서에서는 기원전 2세기,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 때의 순교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저자는, 신앙을 지키며 순교함으로써 백성에게 정의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 이들에게서 주님의 종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예는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내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를 읽다가 필리포스에게,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필리포스는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합니다(사도 8,32-35). 필리포스는 이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충만하게 실현되었다고 설명합니다(1베드 2,22-25도 참조). 그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 죽음으로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구원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두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본문이 여러 경우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52,14)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하지요. 종의 얼굴은 비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충만하게 실현됩니다. 그분께서 가장 완전하게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53,11)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53,10).

 

이것을 가리켜 이사야서는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죽임을 당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을 의롭게 하는 것, 그것이 주님의 종의 “성공”이었습니다.

 

주님의 종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면, 그 성공은 수난과 죽음 후에 오는 부활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 다른 이들의 죄를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구원될 때, 그것이 주님의 종의 성공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하늘의 지혜》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7년 6월호(통권 495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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