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와 거울 보기 (9) 하느님이 가져다주실 해방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파라오의 완고한 마음과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려는 모세의 굳건한 의지는 이집트 땅에 열 번째 재앙이 내릴 때까지 충돌합니다. 열 번째 재앙 예고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집니다(11장 참조). 파라오에게 이 재앙에 대한 예고가 주어지지 않은 이유는 그 이전 단락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10,28에서 파라오는 모세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는 날 그를 죽여 버리겠노라고 협박하였고, 모세는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파라오의 곁을 떠났습니다. 따라서 열 번째 재앙은 사전 예고 없이 이집트 땅에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열 번째 재앙과 파스카 축제 열 번째 재앙 이야기는 12,29-30에서 아주 간략하게 보도됩니다. 한밤중에 파라오의 맏아들을 비롯해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맏배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제야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을 떠날 수 있게 허락해 줍니다(12,31). 그러면 열 번째 재앙 예고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지고, 그 재앙이 발생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으로 그날 밤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습니다(12,1-28).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이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말씀하신대로, 첫째 달 열흘째 되는 날에 일 년 된 양이나 염소 가운데 흠 없는 수컷을 따로 골라 두었다가 이집트를 떠나기 전날 저녁 어스름에 잡아 그 피를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불에 구워 익힌 고기에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었습니다. 다 먹고도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불에 태워 버렸습니다. 그들은 이 음식을 먹을 때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었습니다. 그들은 이 밤이 새기 전에 이집트 땅을 떠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종살이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구원 업적을 해마다 기념하고 이 예식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예식은 ‘주님을 위한 파스카 제사이며,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시어, 그들의 집들을 구해 주셨음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12,27 참조). 참된 힘의 주인이신 하느님 이 본문과 우리 삶은 어떻게 연결될까요? 어떤 면에서 우리의 거울이 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오게 될 열 번째 재앙과 파스카 축제에 관한 이야기를 연결하여 보도하는 방식은 여러 면에서 신앙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선,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결정적으로 해방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억압하는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힘과 직접 대결하지 않았습니다.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집트인들의 맏아들과 맏배가 죽임을 당하는 일에 이스라엘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성경 저자는 그들이 그 시간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노라고 보도합니다.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한 힘에 대한 심판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깊은 신앙 고백입니다. 그들에게 해방을 가져온 분은 하느님이시지 그들의 노력이 아니었음을 그들은 대대손손 고백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뒷짐 지고 하느님이 모든 것을 하시도록 방관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파스카 축제, 곧 전례의식을 통하여 그들의 의식 전체가 하느님을 향하도록 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참된 힘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우러러보며, 거짓 힘의 영향력에 패배당하지 않도록 그들의 의식을 고양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가져다주실 해방을 한마음으로 고대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인이지만 모두가 다 온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이었다면, 우리는 생명을 해치는 악한 습관이나 중독, 자유를 옭아매는 피해의식이나 열등감, 애정 결핍과 지나친 경쟁의식 등에 사로잡힌 종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의 첫걸음은 자신이 종의 상태에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살이에서 어떻게 해방될지는 이스라엘 백성의 체험에서 배워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이 그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의 고된 노역에 고통받으며 하느님께 울부짖었고, 그 울부짖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가엾은 이의 부르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파라오의 억압에서 해방되도록 이끄셨습니다. 우리의 해방도 이렇지 않을까요?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간절한 원의를 품고, 그 원의를 들어주실 분께 말씀드리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은 구원과 해방이 이루어지던 그 밤에 잠들지 않고 깨어 있으면서 그들의 해방을 실현하실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가져다주실 해방을 고대했습니다. 우리의 해방도 우리가 참된 자유인이 되기를 바라고 희망하시는 하느님의 원의와 우리의 원의가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죽을 힘을 다하여 지금의 종살이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하시는 대신, 오늘 우리에게 그 종살이에서 벗어나고 싶으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이 건네시는 손을 마주 잡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12장의 거울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뻗으시는 하느님을 비추어 줍니다. 지금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어떤 거리에 있습니까? 그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9월호(통권 486호), 김영선 루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