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와 거울 보기 (18) 옛 계약의 표시와 새로운 계약의 표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 기슭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조건이 달린 계약입니다. 계약의 조건은 십계명(20,1-17)과 계약법전(20,22-23,33)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난달에 우리는 십계명 가운데 첫 세 계명을 살펴보았습니다. 첫 세 계명이 하느님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규정한다면, 나머지 일곱 계명은 이 계약이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넷째 계명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입니다. 부모 공경은 지혜문학에서도 아주 중요한 가치로 다루어지는데, 그 가르침에 따르면 부모 공경이란 부모의 가르침과 교훈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잠언 1,8; 6,20), 부모가 주는 견책을 달게 받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과 태도를 바꾸는 것(신명 21,18 참조), 생명을 주신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집회 7,27-28),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집회 3,1-16)를 다하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의무’란 말과 행동으로 부모를 공경하되 상전처럼 섬길 것, 연로하신 부모를 젊었을 때와 똑같이 존경하고 설사 지각을 잃게 되더라도 업신여기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것입니다. 지혜문학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고 장수를 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집회 3,3.6). 이처럼 부모 공경을 강조한 이유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질서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라키 예언자는 엘리야 예언자가 다시 와서 메시아 시대를 준비할 때 그가 할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는 것’(말라 3,24)이라고 선포합니다. 다섯째 계명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예수님은 이 계명을 설명하시면서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고, 바보나 멍청이라고 말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 5,21-26). 나와 함께 사는 이들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며 무시하는 행위가 곧 그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계명은 “간음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예수님은 이 계명을 ‘음욕을 품고 다른 이를 바라보는 것이 곧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마태 5,28). 내가 마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만의 과거와 현재가 존재하고 미래의 꿈도 품은, 한마디 말로는 결코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스런 존재입니다. 그런 그의 본질적 측면은 보지 않고 그의 얼굴이나 몸 등 신체의 일부만을 보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결국 그의 전 존재를 잔인하게 축소하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 간음이 가져올 두려운 결과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 욕구의 대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일곱째 계명은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남의 것을 강제로 뺏는 것만이 도둑질이 아니라 내 몫이 아닌 것을 갖는 것, 다른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차지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충분함의 윤리’를 주창하는 이들은 충분히 쓰고도 남는 것은 다른 이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내 서랍과 옷장에 일 년 동안 한 번도 건드리지 않은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은 내게 필요없는 것인 동시에 다른 이의 몫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저는 제 몫이 아닌 많은 것을 소유한 도둑인 셈입니다. 일 년에 한두 차례 가진 것들을 정리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여덟째 계명은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구약 시대의 법정에서는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증언이 있어야만 유죄가 성립됩니다(민수 35,30; 신명 17,6; 19,15 참조).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거짓 증언을 한다면 억울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봇입니다. 나봇은 그가 하느님과 임금을 저주하였다고 증언한 두 불량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습니다(1열왕 21,11-14). 이처럼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것도 거짓 증언이지만,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거짓 증언에 해당합니다(23,1). 증언을 회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레위 5,1 참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나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지 아닌지를 진지하게 숙고하며, ‘침묵은 금’이라는 금언을 더욱더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탈출기의 마지막 계명(20,17)은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인데, ‘이웃의 집’ 곧 이웃의 소유에는 이웃의 아내,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등이 포함됩니다. 신명 5,21은 이 구절을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과 이웃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으로 분리합니다. 즉 이웃의 아내는 이웃의 재산에 포함되지 않는 독립적인 범주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신명기 십계명을 따르고 있습니다. 아홉째와 열째 계명 모두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 ‘탐내다’(하마드 חמד)는, 어떤 것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을 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얻고자 구체적으로 궁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제아무리 아름답고 귀한 것이라도 부당한 수단으로 얻으면 흠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흠은 그것을 소유한 이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비뚤어지게 합니다. 십계명의 모든 명령은 한 사회가 적절하게 유지되는 데 꼭 필요한 규정들입니다. 하느님은 이 열 가지 말씀을 돌판에 새겨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고, 이 돌판은 그들에게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상기시켜 줍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6월호(통권 495호), 김영선 루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