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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19: 계약법전에 담긴 사랑의 지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8,414 추천수0

탈출기와 거울 보기 (19) 계약법전에 담긴 사랑의 지혜

 

 

시나이 계약의 체결은 탈출기 24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시나이 계약의 조건이 되는 십계명과 계약법전의 내용을 보고 있습니다. 십계명에 이어 나오는 계약법전은 하느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을 두려워한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에 따라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계약법전이라는 제목은 “계약의 책”(24,7)에서 나온 말로, 이 책의 내용이 법이기 때문에 학자들이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모세는 이 책을 계약예식 중에 백성에게 읽어 줍니다(24,7 참조). 오경에는 계약법전(20,22-23,33) 외에도 사제계 법전(25-40장: 레위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사제와 연관된 법들), 신명기 법전(신명 12-26장), 그리고 성화법전(레위 17-26장)이 있습니다. 이 법전들을 비교해 보면 - 노예 해방이나 안식년, 축제일에 관한 규정 등 - 동일한 규정에 대한 세부 설명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법전들이 형성된 역사적·사회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성실히 지키려고 한다면 오경에 나오는 규정들 간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 시대에는 서로 다른 성경의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를 설명해 줄 율법 학자들이 필요했습니다.

 

비록 친절한 율법 학자는 없지만, 위대한 스승이신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하여 시나이 계약의 조건이 되는 계약법전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법전의 순서를 살펴보면, 먼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루는 ‘우상숭배와 제단에 관한 법’(20,22-26)이 언급되고, 이어서 ‘민법과 형법에 해당되는 일련의 규정들’이 소개됩니다(21,1-22,16). ‘윤리적 · 종교적 권고 모음’(22,17-23,19)이 그 뒤를 따르고, 이 법률 규정들을 지킬 때에 따라오는 ‘보상과 경고’를 언급하는 후문(23,20-33)으로 법전은 종결됩니다. 그런데 이 법전은 완전하고 체계적인 법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상거래나 결혼과 상속, 행정에 관한 법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탈출기 안에 계약법전을 포함시킨 저자는 이스라엘의 고대 법전을 소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의와 종교에 대한 이상적인 원칙을 제시하기 위하여 특정한 법을 선택하여 소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계약법전은 ‘제단에 관한 법’(20,22-26)으로 시작됩니다. 계약법전 뿐만 아니라 성화법과 신명기법전 모두 예배와 예배 장소에 대한 법으로 시작됩니다. 이를 통하여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탈출 20,24-25은 흙이나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되,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여 예배하려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제단을 쌓을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법전의 첫머리인 신명 12,5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고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려고 … 선택하시는 곳” 바로 그곳에서만 제단을 쌓고 주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명합니다. 따라서 제단을 쌓을 때, 충돌하는 이 두 법 중 어느 규정을 따라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탈출기의 규정은 이스라엘 백성이 정착하기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중인 이스라엘에게는 어디에서든지 제단을 쌓고 하느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규정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실천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처한 사회 · 역사적 상황에 따라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법규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법은 그것이 무엇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하지만 근원적으로 그 법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단에 관한 법은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어떻게 예배하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해 보도록 초대합니다. 제단에 관한 법 규정이 말하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예배하되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정해진 규정 안에서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예배가 율법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나의 욕구와 필요를 내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중심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두려면 수시로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는 나의 욕구와 의지를 길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법은 노예 해방에 관한 법(21,1-11)으로 히브리인이 종이 되었을 경우에 일곱째 해에는 해방시켜 주라는 규정입니다. 이 법이 여자 노예에게는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법의 취지는 묵상해 볼 만합니다. 이 법은 적어도 7년마다 종속관계가 발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든, 형제관계로 회복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옛 규정이지만 우리 삶에 필요한 지혜를 제공합니다. 만약 우리가 적어도 7년마다 어긋난 인간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 더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법 규정들, 특히 탈출 21,12-23,19에 언급된 법 규정들도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는지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법 뒤에 감추어진 사랑의 지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7월호(통권 496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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