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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모압 여인의 사랑과 도전, 룻기1: 모압 여자의 도전장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8,102 추천수0

모압 여인의 사랑과 도전, 룻기 (1) 모압 여자의 도전장

 

 

룻은 상종하지 말아야 할 인간입니다. 모압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암몬족과 모압족은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고, 그들의 자손들은 십 대 손까지도 결코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다”(신명 23,4). 십 대 손까지도! 그런데 룻기 마지막의 족보에 따르면 룻의 아들이 오벳, 오벳의 아들이 이사이, 이사이의 아들이 다윗입니다. 룻기는 신명기의 법전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언제 도전장을 던졌나

 

도전장을 언제 던졌을까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룻기의 주인공인 룻과 룻기의 저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룻기의 첫 절은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1,1)라는 말로 룻기의 배경을 설정합니다. 룻을 판관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차례를 보아도 룻기는 판관기 다음에 나옵니다. 이렇게 룻기를 판관기와 사무엘기 사이에 놓고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룻기도 그 앞뒤의 책들과 같은 종류의 역사책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룻기가 그 자리에 있던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나뉘는데, 토라 바로 다음에 나오는 것이 여호수아기, 판관기, 그 다음은 본래 사무엘기입니다. 룻기는 성문서에 속하기 때문에 예언서가 모두 나온 다음, 맨 끝부분에 있었는데 바로 그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라는 첫 구절 때문에 성경을 번역하던 사람들이 여기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룻기는 본래 판관기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기야 뭐, 판관기라고 해서 판관 시대에 쓰인 것도 아닙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세종대왕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었으니까요. 어떤 시대이든 판관 시대의 인물 룻에 대해 쓸 수는 있었겠지요.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역사를 꺼내 와서 소통이 없는 현대의 상황을 비판할 수 있듯이, 후대의 누군가가 룻의 이야기를 하여 당대 상황에 도전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언제? 순전히 가능성만 말한다면 판관 시대 이후 어느 시대라도 가능했겠지요.

 

 

다윗 시대?

 

어떤 이들은 룻기가 아주 오래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룻기가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다”(4,22)는 말로 끝나는 데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저자가 룻기를 쓴 목적이 다윗의 조상 가운데 모압 여자가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봅니다. 아직 다윗 왕조의 권위가 확립되지 않았던 기원전 10-8세기에 이 책이 작성되었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이렇게 연대를 추정하는 데 다른 근거도 제시합니다. 룻기에서 때때로 고풍스런 단어나 이른 시기의 문법 형태를 사용하고, 오래전의 법률 제도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런 근거는 그다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현대인이 세종대왕 드라마를 만들 때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같이 요즘에는 쓰지 않는 옛 표현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대의 저자가 오랜 과거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면 일부러 예스러운 형태를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래에는 룻기가 다윗 시대에 작성되었다고 보는 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보다 늦은 시기의 책이라는 증거가 더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에즈라 시대?

 

사극에서 옛날 어투를 모방할 수는 있지만, 미래 시대의 신조어를 미리 생각해 낼 수는 없지요. 그런데 룻기에는 다윗 시대의 히브리어가 아닌, 몇 세기 지난 다음에 히브리어에 영향을 미쳤던 아람어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그만큼 후대에 작성된 책이라는 증거일 것입니다. 게다가 ‘옛날 이스라엘에는 … 관습이 있었다’(4,7 참조)는 식의 설명은 이 책이 작성된 때에는 이미 그런 관습이 사라졌음을 말해 줍니다. 룻은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1,1)에 살았던 인물로 등장하지만, 룻기의 저자는 그 시대를 ‘옛날’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그럼 룻기의 작성 연대는 어느 시대일까요?

 

룻기가 도전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이스라엘이 모압 여자 룻을 거부했던 시대는 언제일까요?

 

이스라엘이 외국인에 대해 유독 배타적 태도를 보인 때는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였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다음, 기원전 5세기경의 일입니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다윗 왕조가 무너져 처절히 멸망했던 이스라엘은 우리가 왜 멸망했을까 생각했고, 50년 후 유배지에서 돌아와서는 이제부터라도 민족의 정체성을 철저히 지켜 내자며 결의를 단단히 했습니다. 백성은 온종일 모여 서서, 에즈라가 읽어 주는 율법서를 들으며 울었습니다. ‘아, 우리는 우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곳에서 해방시켜 이 땅에 데려다 주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셨던 대로 살지 않았구나.’ 그들은 깊이 참회하며, 주님의 백성으로서 순수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한쪽으로 치닫다 보면 다른 쪽은 보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 온통 집중했던 이들은, 다른 민족들을 자신들과 같이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생활을 개혁하고자 했던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유다인 남자들과 이미 결혼해서 살고 있고, 자녀까지 딸린 이방 여자들을 모두 내보내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여러 책에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만) 이건 너무했습니다.

 

그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요나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동쪽(니네베)으로 가라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서쪽(타르시스)으로 달아난 인물, 요나가 에즈라-느헤미야 시대 이스라엘의 초상입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룻기는 모압 여인을 수용합니다. 모압 여인과의 혼인을 옹호합니다. 아니, 모압 여인을 다윗의 조상으로 내세웁니다. 당시 사람들의 배타적 태도를 찌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룻기의 작성 연대를 늦게 잡을 때에는, 다윗의 족보가 첫 번째 해석과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룻기의 이야기가 다윗의 권위를 밑받침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족보가 룻기의 이야기를 밑받침해 주게 됩니다. 에즈라 시대에 다윗은 의심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인물입니다. 의심스러운 것은 오히려 룻의 도전입니다. 여기에서 이 이야기가 다윗의 족보로 끝난다는 것은, 룻기가 선택한 길이 올바른 길임을 입증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시대라도 상관 없다?

 

이렇게 다윗 시대 또는 에즈라 시대에 룻기가 작성되었다고 보는 이들은, 룻기의 주제가 그 시대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룻기는 판관기나 사무엘기와 계통이 다릅니다. 물론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로 이어지는 신명기계 역사서도 학문적 의미에서 순수한 역사책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신학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책들의 근본 의도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성찰입니다. 그러나 룻기는 에스테르기, 유딧기와 함께 역사서라기보다 교훈을 주는 이야기에 속합니다. 다음에 지적하겠지만, 룻기가 전하는 이야기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룻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묻게 되지요. 그 대답의 예로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한 며느리 룻의 충실성을 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 가정의 중요성 등 다른 대답도 가능하겠습니다. 이러한 해석에서 룻기의 시대적 배경이나 작성 연대는 그 책을 이해하는 데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혼란스러우시지요? 조금씩 익숙해지며 단련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책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룻기의 경우 많은 이가 룻기의 시대 배경으로 지지하는 것은 두 번째 해석입니다. 도전장의 내용을 보면 누구에게 도전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모압 여자 룻은 자신을 배척하는 이들에게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그 길이 무엇인지는 아직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해석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여러 해석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 말씀의 풍요로움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3년 7월호(통권 448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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