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 야고보 서간 (1)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신약성경의 서간 편에서 가톨릭 서간이 차지하는 분량은 전체 1/4 정도밖에 되지 않아, 바오로계 서간에 비하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적다. 그럼에도 가톨릭 서간의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야고보 서간은 ‘실천으로 완성되는 믿음’을 강조하여,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을 선포하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물음표를 던지는 듯하다. 얼핏 보아서는 대립적이기까지 한 이 가르침들이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교 정경에 나란히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앞으로 6회에 걸쳐 야고보 서간을 읽어가면서, 그 모든 것은 하느님 지혜의 섭리였음을 깨달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누가 누구에게?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1,1). 서간이라고 하면 보내는 이와 받는 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 서간은 서두에서 야고보가 이 편지를 썼다고 밝힌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야고보는 모두 세 명이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마태 4,21; 마르 1,19)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태 10,3; 마르 3,18), 그리고 주님의 형제 야고보(마태 13,55; 마르 6,3)다. 이 중 어느 야고보일까?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 공생활의 중요한 순간마다 항상 함께했던 제자이다. 그런데 성령 강림 후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헤로데의 손에 순교한다(사도 12,2 참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도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예수님 승천 후 예루살렘 위층 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던 제자들의 무리와 함께 있었던 것(사도 1,13 참조) 외에는 이렇다 할 행적이 없다. 사도 야고보의 순교 이후에도 사도행전에 계속 등장하는 야고보가 있는데, 그가 바로 주님의 형제 야고보이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에게서 직접 제자로 불리지 않았지만,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었으며(1코린 15,7 참조) 선교 초기의 갈등 상황을 해결할 정도로 권위 있는 인물이었다(사도 15,13-21 참조). 따라서 야고보 서간의 저자가 우리에게 알려진 세 야고보 중 하나라면, 주님의 형제 야고보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세련된 그리스어 문체를 고려하면,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을 나자렛 사람 야고보가 직접 이 서간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야고보 서간은 그리스어에 능통한 누군가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해 그의 이름과 권위를 빌려서 쓴 차명 서간으로 볼 수 있다.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1,1) 열두 지파라고 하면 당연히 야곱의 열두 아들의 후손들로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 왕국을 이룬 그 지파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땅에서 살면서도 정작 그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명을 따르지 않다가 결국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징벌의 기간이 끝난 후 이스라엘 백성은 유다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나, 모든 지파가 다 귀환한 것은 아니었다. 사도 시대 당시의 유다인들은 유배지였던 바빌론과 페르시아 지역을 비롯해 이집트와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지중해 전역에 흩어져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야고보서를 읽어 보면, 독자들이 유다인들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이미 알고 있으리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서간은 글자 그대로 세상에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이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서간이 오늘날의 우리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서 지닌 특별한 자격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이고, 그 관계의 핵심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하느님의 가르침인 토라, 그 토라를 완성하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 아니시던가?(마태 5,17 참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라면 누구든지 야고보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며,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이 서간의 저자도 그것을 더 기뻐할 것이다. 완전은 두 마음을 품지 않은 상태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1,4ㄴ). 비록 약속의 땅을 떠나 세상에 흩어져 있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야고보는 완전함으로 초대하며 이 서간을 시작한다. “완전”이라고 하면 ‘자칫 그 자체로 완벽하여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상태’를 떠올리기 쉬우나 야고보가 말하는 완전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은”(1,8) 것과 반대되는 의미이다. 즉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믿음과 실천 사이에, 또한 말과 행동 사이에 그 어떤 불일치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야고보서에서 추구하는 완전이란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상태이기보다 오히려 철저히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에 가깝다. 이처럼 하느님의 뜻에 따름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되는 길을 야고보는 ‘믿음과 실천의 관계’, ‘구약성경 지혜의 가르침’, ‘복음서 예수님의 가르침’, ‘시련과 기도’, ‘빈부의 문제와 자비의 실천’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이 다양한 주제에 관해 차근히 살펴보며 야고보서 저자의 육성을 가까이에서 들어 보길 희망한다. * 강은희 님은 미국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수학하였으며(성서학 박사),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에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2월호(통권 479호), 강은희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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