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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베드로의 첫째 서간 (7) 공동체를 향한 마지막 당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8,112 추천수0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 베드로의 첫째 서간 (7) 공동체를 향한 마지막 당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이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공동체가 내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를 강조하며 마무리된다. 앞 장에서는 공동체의 풍요를 위해 저마다의 다양한 은사를 통하여 서로 봉사할 것을 권고했다면, 이번에는 공동체 내 세대 간의 일치를 위해 원로들과 젊은이들이 갖추어야 할 합당한 자세를 깨우쳐 준다.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5,2)

 

공동체의 원로들에게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하셨던 마지막 당부와 같은 말을 한다.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주님의 양 떼를 보살피는 일은 억지로 해서도 안 되지만, 그것을 이용해 사욕을 채우려 해서도 안 된다(5,2). 이는 공동체 지도자들이 경계해야 할 양극단이다. 한 공동체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연륜에 떠밀려 원로 자리에 앉게 될 경우도 있다. 그 책임이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들까지 보살펴야 하니 성가신 일일 수 있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그 책임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 공동체를 통하여 깨우침과 성장을 얻었으면, 이제 그 혜택을 돌려줄 때가 온 것이다. 또 다른 극단은 소위 ‘감투’의 매력에 빠진 이들을 향한 것이다. 원로의 위치를 세속적 영예나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데 악용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는 진정한 원로란 권력에서 으뜸이 아니라, 섬김과 모범에서 으뜸이어야 함을 깨우쳐 준다. 공동체는 원로의 양 떼가 아니라 하느님의 양 떼이다. 그 양 떼를 돌보라는 명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너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17)라는 질문을 상기시킨다. 다시 말해 양 떼를 돌보려면 주님에 대한 사랑이 선행되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라면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5,2) 양 떼를 섬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공동체의 어른들이 유념해야 할 가르침이기도 하다.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5,5)

 

베드로는 이제 젊은이들을 향하여 원로들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친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에서는 ‘복종’ 또는 ‘순종’이라는 말이 13회나 등장한다. 본문에서 복종 또는 순종으로 번역된 이 말의 그리스어는 ‘휘파쿠오’와 ‘휘포타소’이다. 휘파쿠오는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고, 휘포타소는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을 우위에 두는 것이다. 이상적인 모습은 이 둘의 결합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되, 또 한편으로는 명령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명하는 이의 마음과 일치되어 움직이는 것!

 

복종이 권위나 강제력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이는 공동체에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겸손과 존중을 통하여 명령과 복종이 이루어져야 함을 가르친다. 그 당위성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5,5-6).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그 무엇도 내세울 것이 없기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원로는 젊은이들에게 복종을 명할 때, 자신이 하느님의 심부름꾼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젊은이들은 신앙의 전통을 온갖 위험으로부터 보존해 온 원로들을 존중해야 한다. 원로들과 젊은이들 간에 상호존중이 선행될 때 비로소 젊은이들의 복종은 가치 있게 된다.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5,9)

 

베드로가 제시한 겸손과 상호존중의 미덕은 공동체가 일치되어 흔들림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공동체 내부 못지않게, 공동체 외부에서도 이들을 향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5,8).

 

베드로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위협하는 존재를 ‘사자’에 비유한다. 사자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동물로 긍정적으로는 왕권의 위엄을 상징하고, 부정적으로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특히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위협이 되었던 경우를 다니엘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다니 6장). 하느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사자 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이 사자를 대적하는 법은 무기나 폭력이 아닌 믿음이었다. 베드로 역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그 공동체를 위협하는 모든 것에 굳건한 믿음으로 맞서 이겨 내라고 격려한다.

 

오늘날엔 직접적으로 덤벼드는 사자는 없을지라도 훨씬 더 교묘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는 것들이 많다. 물질적 풍요와 최첨단 기술이 제공하는 안락함에 젖어 들다 보면, 나눔·희생·동참 등의 그리스도교 가치들을 세속의 가치들과 맞바꾸게 된다. 어느 때보다도 굳건한 믿음과 가치관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혼자서 하는 싸움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가치를 공동으로 상속받은 전 세계 교회, 보편 교회들의 분투에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싸움은 끝없이 이어질 것도 아니다. 정의와 평화가 넘쳐흐르는 하느님의 영원한 통치에 비한다면, 지나가는 싸움일 뿐이다. 지상에서의 싸움에 지쳐 갈 수도 있는 신도들이 영원을 향하도록 용기를 북돋우며, 베드로의 첫째 서간은 마무리된다.

 

* 강은희 님은 미국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수학하였으며(성서학 박사),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동 대학교 신학원에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2월호(통권 491호), 강은희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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