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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창세기 인물 열전: 벤야민과 벤야민의 후손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10,780 추천수0

[창세기 인물 열전] 벤야민과 벤야민의 후손들

 

 

벤야민은 야곱의 막내아들이다. 그렇지만 그 후손인 벤야민 지파는 막둥이 이미지와 조금 거리가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맹수처럼 용맹하고 때로 잔인한 면도 보인다. 이를 예견한 야곱은 임종 전 유언에서 벤야민을 이리에 견주었다(49,27). 실제로 이스라엘 판관으로 활동한 에훗이 벤야민의 후손이고(판관 3,15 참조), 판관 19-21장에는 벤야민 지파의 야만성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런 역사를 만회라도 하듯 벤야민 지파는 이후 이스라엘의 첫 임금을 내었고(1사무 10,17-24 참조), 사울에서 바오로로 개명한 신약 시대 사도 역시 벤야민의 후손이다(로마 11,1).

 

 

어머니의 목숨과 맞바꾼 아들

 

라헬은 벤야민을 낳다 세상을 떠난다. 자신이 겪은 산고 때문에 아들 이름을 ‘벤 오니’라 하려 했지만, 야곱이 벤야민으로 고친다(35,18). ‘벤 오니’는 ‘내 고난의 아들’을 뜻하고 벤야민은 ‘내 오른손의 아들’이므로, 야곱이 막둥이에게 좀 더 상서로운 이름을 붙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오른쪽은 기민함, 힘, 보호력 등을 상징했다. 히브리어 ‘야민’은 ‘남쪽’이라는 뜻도 있는데, 이는 형제들 가운데 벤야민만 남쪽에서 태어났음을 시사한다. 또는 ‘야민’을 ‘야밈’의 변형으로 읽어 ‘세월’, ‘여러 날’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러면 벤야민은 ‘세월의 아들’ 곧 ‘늦둥이’를 뜻하는 이름이 된다(44,20 참조). 벤야민의 이름에 담긴 다양한 뜻 안에 그의 출생에 관한 사연이 다 함축되어 있는 셈이다. 벤야민은 라헬의 아들인데다 막둥이라서 가장 사랑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야곱이 가장 아낀 아들은 요셉이었다. 이는 어쩌면 벤야민이 자신에게서 라헬을 앗아 간 자식이라는 앙금이 야곱에게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머니 대신 죗값을 치르다

 

성경에는 벤야민에 얽힌 이야기가 많지 않다. 그가 주목받는 때는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간 뒤부터다. 가나안에 흉년이 길어지자, 야곱의 아들들은 곡식을 구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때 그곳의 재상이던 요셉이 형제들을 알아보고 벤야민을 억지로 데려오게 한다. 그리고 형제들을 시험하려고 벤야민에게 금잔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운다(44,1-12).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이 이번에도 자기들만 살려고 동생을 희생시키지 않을까 지켜본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일은, 라헬이 아버지에게서 수호신을 훔친 창세 31,19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실제로 수호신을 훔친 라헬은 발각되지 않았고, 금잔을 훔치지 않은 벤야민은 잡힌다. 십계명에는 조상이 죗값을 치르지 않을 경우 후손이 대신 치러야 한다는 규정(31,32)이 나오는데, 이 규정이 벤야민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는 듯하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죗값을 후일 아들이 갚은 모양새가 된 것이다.

 

 

벤야민의 후손들

 

벤야민은 지파들 가운데 작은 축에 속했지만(1사무 9,21 참조), 이스라엘의 첫 임금은 이 지파에서 나왔다. 사울은 능력을 인정받아 임금이 되었으나(1사무 11장), 아말렉과의 전투(1사무 15장)에서 하느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 임금 아각을 사로잡고 전리품까지 일부 챙긴 일로 다윗에게 왕위를 내주어야 했다. 사실 성경에는 다윗이 사울보다 나은 인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이는 다윗이 도덕적으로 더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일례로, 아내도 많으면서 타인의 아내까지 욕심내 그 남편을 죽게 한 다윗에 비해, 사울은 아내 하나와 첩 하나만 두었다(1사무 14,50; 2사무 21,8 참조). 그렇지만 다윗이 사울보다 강하여 승리자가 되었으므로, 사울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 안에 갇힐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그렇게 사울 가문과 벤야민 지파는 쇠퇴한 것 같았지만 에스테르기에서 극적으로 재기한다. 페르시아 왕후가 되어 유다 민족을 구한 에스테르와 그의 사촌 모르도카이가 벤야민의 후손인 것이다. 에스 2,5은 모르도카이의 증조부 이름을 “키스”로 소개한다. 그런데 키스는 사울 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다(1사무 9,3 참조). 물론 모르도카이가 훨씬 후대 인물이라 사울 아버지에게 증손자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에스테르기는 모르도카이의 조상 가운데 사울에 얽힌 이름이 있음을 암시하여, 모르도카이가 사울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웠음을 보여 주려 한 듯하다. 유다인 몰살 음모를 꾸민 하만은 “아각 사람”(에스 3,1)이다. 아각은 사울의 몰락에 결정적 계기가 된 아말렉의 임금이기에, 하만이 아말렉의 후손임을 암시해 준다. 아각의 후손인 하만을 키스의 후손인 모르도카이가 굴복시킴으로써, 사울 가문의 옛 영광을 회복시켜 준 셈이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베드로와 쌍벽을 이룬 바오로가 벤야민의 후손이므로, 벤야민 지파의 역사는 부침 많은 세월 끝에 제자리를 찾는다.

 

* 김명숙 님은 예루살렘의 히브리대에서 구약학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홀리랜드대와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과 수도자 신학원에서 구약학 강의를 하였고,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성서와 함께, 2017년 12월호(통권 500호 감사호),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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