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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생명의 물에 목말라 하십니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6 조회수10,836 추천수0

생명의 물에 목말라 하십니까

 

 

고대 팔레스티나에서 물은 매우 귀했기에 그 가치가 대단히 컸다. 따라서 물은 성경에서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구약성경에서 물은 생존의 필수 수단 외에 정결 예식 등 제의 기능, 하느님의 복과 구원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또 물은 하느님께서 정복하시는 원수로 상징되기도 한다.

 

 

하느님의 강복과 구원의 상징

 

물은 하느님의 강복과 구원의 상징이다. 따라서 물은 영적 음료로 표현된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이사 12,3).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이사 55,1). 물은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나의 가르침은 비처럼 내리고 나의 말은 이슬처럼 맺히리라. 푸른 들에 내리는 가랑비 같고 풀밭에 내리는 소나기 같으리라”(신명 32,2). 주님의 말씀을 상실하는 것은 목마름과 굶주림으로 생각되었다(아모 8,11 참조).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말라 버리는 웅덩이의 물에는 의존하면서 ‘생수의 원천’인 주님을 거부한다고 꾸짖었다(예레 2,13 참조).

 

새 시대의 이스라엘은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이사 58,11)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목마른 땅에 물을, 메마른 곳에 시냇물을 부어 주리라. 너의 후손들에게 나의 영을, 너의 새싹들에게 나의 복을 부어 주리라”(이사 44,3). 마지막 때에 영은 땅을 새롭고 깨끗하게 할 것이다(에제 36,25-27 참조). 에제키엘은 생명의 물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흘러나와 동쪽으로는 사해로 흘러들어가 흐르지 않는 물도 맑은 물로 바꾸고, 서쪽으로는 지중해로 흘러들어가 생명의 싹을 틔우는 것을 환시로 보았다(에제 47,1-12; 즈카 14,8 참조). 예수님 시대의 라삐들은 이런 것들을 성령에 대한 예언자적 상징으로 이해했다.

 

참으로 놀랍다. 구약성경의 물 이미지가 요한 복음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니! 예수님께서는 그 예언을 성취하신 메시아시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예언의 성취를 선물로 받았다!

 

 

요한 복음에서 물의 의미는?

 

요한 복음에는 물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휘도르(ὕδωρ)가 21회 사용된다(마태오 복음 7회, 마르코 복음 5회, 루카 복음 6회). 물은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 외에 일곱 군데에서 독특하게 사용된다. 물이 포도주로 바뀜(2장 참조),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3장 참조), 생수에 대한 약속(4장 참조), 벳자타 못에서 병자를 고침(5장 참조), 초막절 선포(7,37-39 참조),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13장 참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와 물(19,34 참조).

 

요한 복음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물은 세례와 관련된다(1,26.33 참조).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다는 것은 구약의 정결 예식이 새 복음으로 대체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메시야 시대가 와서 하느님의 큰 복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3장에서 물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4장에서 우물물은 ‘생명의 물’과 대조되는데, 그 물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 또는 성령을 상징한다. 물은 하느님의 선물과 예수님을 알아보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5장에서 한 병자는 벳자타 물 자체가 치료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잘못 믿어서 38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한다. 요한 복음사가는 치유의 원천이 예수님이라고 알려 준다. 또 예수님 자신이 “참된 음료”(6,55)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예수님께 와야 한다(7,37 참조).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생수를 마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의 모티브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과 연결된다(7,38-39; 19,34 참조).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음으로써 보게 된다(9장 참조). 이는 영적 눈멂을 치유하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보여 준다(15,3 참조).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다(13장 참조). 예수님의 죽음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는 행위로 표현된다(18,11 참조). 생수를 주시는 분이 목마르다고 외치시고 좋은 포도주를 주시는 분이 신 포도주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온다(19,28-29 참조).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직 죽음만으로 약속하신 당신의 영을 넘겨주시기 때문이다(19,30 참조). 마침내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온다(19,34 참조).

 

왜 요한 복음사가는 상징을 많이 사용할까? 복음사가는 예수님과 그분께서 주시는 구원을 상징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을 매개로 삼아야만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하여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이라는 상징은 요한 복음의 집필 목적(20,31 참조) 및 서언의 증언(1,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과도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 생명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는?

 

요한 복음에서 물은 씻음과 새로워짐의 상징이며, 한편으로 변화가 필요한 유다교의 낡은 관습을 나타낸다(야곱의 우물물, 카나의 물 항아리, 벳자타 못). 물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약속하시고, 초막절 때 선포하신 ‘생수(ὕδωρ ζῶν, living water)’다. 이 생수는 예수님, 새 생명, 성령을 가리킨다.

 

그런데 7,37-38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곳이 예수님인가 아니면 믿는 자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구두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읽고, 어떤 이들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 오라. 그리고 믿는 자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성경 말씀대로 ‘그 배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읽는다. 많은 학자가 후자를 선택하지만, 우리의 《성경》은 전자를 택했다. 그 다음 구절이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라 설명하는데(7,39 참조), 예수님이 생수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는 19,34에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흐른 것과도 연결되고, 그분의 죽음으로 성령이 오신다는 것도 요한 복음 문맥에 맞다. 한편 믿는 자들에게서 생수가 나온다고 읽어도 무방하다. 요한 4,14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생수를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고 그분을 믿는 사람들도 성령의 선물을 받아 그 속에서 샘물이 흘러나올 것이다. 후에 그리스도인들은 ‘선물(δωρεά)’이라는 단어를 성령과 연관시켰다.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성령의 물은 우리의 삶을 ‘솟아나는’ 샘으로 변화시킨다. 이 단어는 삼손, 사울, 다윗과 같은 사람들 안에서 영이 활동한다고 할 때와 사도행전에서 앉은뱅이가 치유되어 ‘기뻐 뛸’ 때도 사용되었다.

 

 

저희에게 생수를 주십시오!

 

몸이 굶주림과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영혼도 영적 음식과 물을 원한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영적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 4,10).

 

그렇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영적 목마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다. 우리는 예수님께 진정으로 생명의 물을 달라고 청하는가? 물을 마시듯 매일 청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지상의 것들을 통해 생수의 영적 의미를 바라보기를 원하신다. 그 생수는 무더위와 소외로 지친 사마리아 여인을 변화시켜, 이웃에게 “와서 보라”고 선교하며 예수님을 증언하도록 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오는 수고를 덜어 주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수는 삶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하고 그것을 이겨 낼 영적 힘을 준다.

 

우리는 정말 우리 안에 생수가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가? 세례받은 후 새 생명의 실재를 느끼는 것, 성체를 모신 뒤의 일치, 매 순간 지혜를 깨닫는 것, 생명을 살리기 위한 노력, 하느님 말씀에서 얻는 기쁨과 평화, 이웃을 위해 배려하고 희생하고 사랑하는 삶 등은 분명 우리 안에 생수가 흐른다는 증거다. 그렇지 않다면 수분이 부족한 탈수 상태다.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면 체내에 수분이 부족해 혈관이 좁아지고 심장은 더 빨리 뛰게 된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쉬면 증세가 호전된다. 영적 탈수 상태가 아닌지 진단해 봐야 한다.

 

주님, 저희는 현세의 것에만 매달려 땀을 뻘뻘 흘리는 탈수 상태의 메마른 사람입니다. 때로 영적 갈증을 채워 보려 성경 공부도 하고 성체 조배도 합니다. 그러나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기에 이상한 현상이나 낯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주님 저희가 이 무더운 여름에 생수를 마실 때마다 당신을 더 그리워하고 말씀의 참맛을 알게 하소서.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시편 36,10).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시편 42,2-3).

 

* 이혜자 수녀는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소속으로, 서강대학교에 출강하며 수녀원에서 후배 수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8월호(통권 449호), 이혜자 인덕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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