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67) 미나의 비유(루카 19,11-27)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 작은 일에도 성실하여라 - 미나의 비유는 주어진 일을 자신의 능력에 따라 수행하면서 그리스도 신자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인내롭게 극복해 나가는 삶의 자세가 중요함을 일깨운다. 그림은 미켈란젤로 작 최후의 심판,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벽화. 가톨릭평화신문 DB. 미나의 비유는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두 비유가 대단히 비슷한 본문 또는 같은 본문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봅니다. 비유의 상황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19,11) 미나의 비유를 더 말씀하셨다고 루카 복음사가는 기록합니다. 사람들이 듣고 있던 “이 말씀”은 문맥으로는 예수님께서 자캐오의 집에서 하신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9-10)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신 곳은 아직 자캐오의 집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비유 내용을 전하기에 앞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덧붙여 말씀하시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것이 하나이고,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19,11)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의 구원은 주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또한 갈릴래아를 출발할 때부터 예수님의 최종 목적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까지 이 하룻길밖에 되지 않는 예리코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예언자 또는 메시아로까지 여기기도 했던 군중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만 하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집에 구원이 내렸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기만 하면 당장 하느님 나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크게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미나의 비유 말씀은 사람들의 이 같은 생각 또는 기대와 맞물려 있습니다. 비유의 내용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멀리 떠나면서 데리고 있던 종들에게 미나 하나씩을 주고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당부합니다. 마침내 왕권을 받아 돌아와서는 종들에게 돈벌이한 결과를 보고하게 합니다. 첫째 종은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다고 보고하고, 둘째 종은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벌었다고 보고합니다. 주인은 이들에게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하면서 각각 열 고을과 다섯 고을을 맡아 다스리도록 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은 한 미나 그대로 가지고 와서는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하고 보고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이 가지고 있던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사람에게 주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19,26)이라고 말하지요.(19,12-13.15-26) 여기까지는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탈렌트의 비유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마태오복음에는 없는 부분이 루카복음에 있습니다. 귀족이 왕이 되는 것이 싫었던 백성은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반대 의사를 전달합니다. 사절의 말이 먹히지 않았는지, 귀족은 왕권을 받아서 옵니다. 그러고는 자기를 싫어한 원수를 사람들 보는 앞에서 처형시킵니다.(19,14.27) 비유의 이해 이 비유는 두 가지로 나눠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미나 자체에 관한 비유입니다. 비유에서 왕권을 받으러 떠나는 귀족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종들이 받은 미나는 화폐 단위이지만 예수님에게서 받은 명령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화폐 단위로 볼 때 미나는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탈렌트에 비해 훨씬 적은 돈입니다.(아래 ‘알아보기’ 참조) 중요한 것은 적은 돈이라도 불리려는 노력입니다.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인 종이나 다섯 미나를 벌어들인 종은 나름대로 성실히 노력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하는 칭찬과 함께 그에 따른 보답을 받습니다. 반면에 한 미나 그대로 보관해 둔 종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종은 결국 가진 한 미나마저 빼앗기고 말지요. 이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성실한 노력’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실하게 노력한 만큼 더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성실하지 않다면, 가지고 있는 것조차 빼앗으십니다. 한편 귀족이 왕이 되는 것을 싫어한 백성은 바로 예수님을 거부한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요. 그렇지만 그들의 방해 공작은 실패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시 오시는 날 엄정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학자들은 봅니다. 헤로데 대왕의 세 아들 중 맏이인 아르켈라오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4년에 헤로데 대왕이 죽고 세 아들 아르켈라오스와 안티파테르, 필리포스가 아버지의 영토를 나눠 차지하게 됩니다. 맏이 아르켈라오스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차지하면서 왕이라는 칭호를 받기 위해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만나러 로마에 갑니다. 하지만 아르켈라오스의 잔인함이 싫었던 신하들은 유다인 50명을 사절로 로마에 파견합니다. 결국 아르켈라오스는 왕이라는 칭호는 얻지 못하고 영주(또는 분봉왕)라는 칭호를 얻고 돌아옵니다. 어떻게 했겠습니까?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이들에게 잔혹하게 보복합니다. 그러다 결국 그는 기원 후 6년에 쫓겨나고 맙니다. 그러나 아르켈라오스와는 달리 예루살렘을 떠나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왕이 되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선포하는 복음을 받아들여 생겨난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왕으로서 다시 오실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임박한 재림 기대 사상은 옅어져 갔고, 한편으로는 박해도 간헐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미나의 비유를 통해 제시하려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일을 성실히 하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 신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내가 성실히 노력해야 하는 작은 일은 무엇인지, 참고 견뎌내야 하는 박해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알아보기 미나와 탈렌트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미나는 유다인들의 화폐 단위인데, 1미나는 그리스의 화폐 단위인 드라크마로 환산하면 100드라크마에 해당합니다. 탈렌트 역시 그리스 화폐 단위인데, 1탈렌트는 6000드라크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나로 환산하면 1탈렌트는 60미나입니다. 그리스의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로마의 화폐 단위가 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은 농사를 짓는 품꾼이 받는 하루 삯입니다. 1탈렌트는 6000데나리온이지요. 1탈렌트는 농민의 품삯으로 치면 16년 5개월 치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6월 10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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