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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성경 다시 읽기: 구약 성경 역사서는 역사책인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1 조회수11,905 추천수0

[구약 성경 다시 읽기] 구약 성경 역사서는 “역사책”인가?

 

 

“어린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하며 엘리사를 놀려댔다. 엘리사는 돌아서서 그들을 보며 주님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그 아이들 가운데 마흔두 명을 찢어 죽였다.”(2열왕 2,23-24 참조) ‘어휴, 이거 역사서에 나오는 내용인데, 정말 역사 맞아?’

 

 

구약 성경 역사서

 

지금까지 우리는 모세오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구약 성경의 두 번째 파트인 역사서에 관해 살펴보려 합니다. 역사서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정복을 시작한 때부터(여호 1장) 판관시대, 왕국시대를 거쳐 바빌론 유배 시기까지(2열왕 25장), 약 700여 년에 걸쳐 이스라엘이 겪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역사서에는 어떤 책들이 있을까요? 역사서는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되는데, ‘신명기계 역사서’(6권: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역대기계 역사서’(4권: 역대기 상·하권,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그리고 ‘기타 역사서’(6권: 룻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 상·하권)입니다. 이들은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요, 신명기계 역사서는 ‘신명기 정신’(유일하신 하느님과 율법에 대한 충실 여부에 따른 상선벌악)에 따라 과거 역사를 성찰하여 기록했고, 역대기계 역사서는 성전과 경신례 중심의 관점으로 과거를 기록하면서 ‘전례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역사서들의 경우, 실제 역사에 상당히 충실한 마카베오기 이외의 책들은 사실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신앙 교육을 위한 역사적 교훈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의 목차를 펼쳐 보면 금방 아실 테지만 역사서들은 위의 순서 그대로 성경에 실려 있습니다. 아, 물론 룻기는 예외입니다. 역사서들은 주로 그 내용과 관련된 시대순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룻기는 판관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룻 1,1 참조) 판관기 바로 다음에 실려 있지요.

 

 

고대인들에게 “역사”란?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B.C. 484-425)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역사』(그리스어로 ‘히스토리아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당시 ‘히스토리아’라는 말은 ‘실제 역사(history)의 기록’만이 아니라 ‘연구 결과에 대한 서술’이란 의미도 갖고 있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로 칭송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역사적 사실들을 정확하게 기록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신빙성 있는 자료와 그렇지 못한 자료 모두를 일관된 역사의식 안에서 유연하게 설명함으로써, 과거 사건의 원인과 참 의미를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잘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무릇 역사 기록이란 그것을 기록한 사람의 역사관을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사실들을 나열만 해 놓은 일종의 ‘연감(年鑑)’이 아닌 한 말이지요. 그래서 고대 역사 기록을 연구하는 이들은 ‘기록의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기록한 사람의 시대, 사상과 배경’에 대해서도 연구합니다. 그러다 보면 실제 역사(사실)와는 다른 내용들이 책에서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학자들은 쉽게 그 역사책의 권위를 의심하거나 폄하해 버리지 않습니다. 고대 역사가들에게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보다는 ‘그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였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약의 역사서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고대인들의 역사 인식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구약 성경 역사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사실 역사서의 내용 모두를 실제 역사로 우직하게 믿고서 읽고 깊이 묵상하는 분들에게 ‘이건 실제 역사이고 저건 이야기(설화)인데…’, ‘역사적 사실(fact)이 어떻고 진리(truth)는 어떻고…’ 굳이 일일이 지적해가며 분심 들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사실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비추임 안에서 깊이 잠겨있는 묵상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강론 때, 교리 때마다 매번 그런 것들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서 본문을 공부하다가 ‘어, 이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지 않나?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믿어야하지?’ 이런 분심이 들었던 분이 혹시 계시다면,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 ‘역사와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된 책이지만, 여기에는 문학양식을 빌어 구원의 진리나 신앙을 전하는 ‘이야기’도 일부 함께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란, 하느님께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제 사실만을 기록한 일종의 ‘역사 기록 보고서’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의 저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하느님의 구원의 진리를 오롯이 참되게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역사서를 읽을 때,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무엇이 이야기인가에 골몰하다가 정작 하느님께서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을 놓쳐버려서는 안됩니다. ‘무한하신’ 하느님께서 ‘유한한’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주신 당신의 말씀 그대로에 겸손되이 모든 것을 내맡기고, 성령과 함께 그 묵상의 길을 충실히 따라 걸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하느님의 역사(役事)!

 

여호수아기는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가나안 땅을 정복했던 일을 전하고, 판관기는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판관들을 중심으로 주변 이방 민족들의 침입과 점거에 맞섰던 일을, 사무엘기는 왕정 시대의 시작과 사울에서 다윗에 이르는 시대의 역사를,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일 왕국시대와 남·북왕국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이 역사서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무심코 그저 줄거리 중심으로, 때로는 소설책 읽듯이 때로는 역사책 읽듯이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공염불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아니, 우리나라 역사도 다 모르는 사람이 그저 남의 나라 역사를 읽고 있는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이삼천년이나 지난 옛 이야기들을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다인들에게서 배울 만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역사서(여호수아기-열왕기)를 “전기(前期) 예언서”(네비임 리쇼님)라 부르는데, 이스라엘 역사의 주인공을 판관들이나 군사 지도자들, 임금들이 아니라 바로 예언자들로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백성의 지도자 모세도, 그의 군사령관이었던 여호수아도 모두 “예언자”로 일컫고 있습니다.(신명 34,10; 집회 46,1) 왕국 시대의 역사를 주 내용으로 하는 책을 ‘사울기’나 ‘다윗기’가 아니라 예언자의 이름을 따 ‘사무엘기’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요. 다음 호부터 살펴볼 내용입니다만, 나라를 망친 것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갔던 임금들이었고 나라를 구원한 것은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돌려세웠던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역사서를 읽을 때에는 ‘당시 이스라엘에 어떤 일이 있었고 국제 정세는 어땠나?’가 아니라 ‘그때마다 예언자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 그분의 뜻은 무엇이었는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歷史)가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역사서 안에 드러난 예언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역사서는 그저 인간의 역사를 담은 ‘이스라엘 역사책’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깨우치려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됩니다.

 

역사서 안에 담겨 있는 역사와 예언(하느님의 말씀),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귀를 기울이다보면, 내가 그려낸 하느님이 아니라 역사 안에 스스로를 드러내 보여주신 하느님의 진짜 모습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다음 호부터는 가나안 땅 정착과 왕국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텐데, 미리 말씀 드리자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유일하신 하느님과 모세가 전해준 율법에 충실했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저버리고 각자 원하는 것(우상)을 찾아 돌아섰는가?’에 따라 축복과 저주, 성공과 실패의 길로 향했음을 전해줍니다.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길을 잃었을 때마다 예언자들의 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그분의 품으로 돌아왔던 신앙 선조들의 삶이 여러분의 하루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써내려간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쓰는 구원의 역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월간빛, 2018년 7월호,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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