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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예수님 이야기72: 부활 논쟁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루카 20,27-44)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9 조회수9,338 추천수1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72) 부활 논쟁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루카 20,27-44)


부활 신앙과 주 예수 그리스도 향한 믿음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의 질문에 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면서 부활을 강력히 논증하신다. 사진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핀토리키오가 1493년에 완성한 ‘부활’ 프레스코화. [CNS 자료 사진]

 

 

사두가이들이 부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시비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하신 후에 메시아에 관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차례로 살펴봅니다.

 

 

부활 논쟁(20,27-40)

 

이번에는 사두가이들이 등장합니다. 루카복음에서 사두가이가 등장하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사두가이들은 사제 가문과 연결돼 있었고 부유한 명문 가문과 귀족 계급에 속하는 사회 지도층이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과 달리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록된 모세 오경(토라, Torah)만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조상들의 전통’이라고 하는 구전으로 전해오는 율법이나 사회 윤리적 규범(할라카, Halakah)은 배척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고 현상 유지에 집착하는 보수적인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사람이 자식 없이 죽으면 그 형제가 죽은 사람의 아내와 혼인하여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는 모세 율법을 근거로 부활과 관련한 질문을 예수님께 던진 것입니다. 이들이 질문의 근거로 내세운 모세 율법은 신명기 25장 5-10절에 나오는 내용으로, 아내가 죽은 남편의 형제와 혼인한다고 해서 역연혼(逆緣婚), 또는 형수나 제수와 혼인한다고 해서 수혼법(嫂婚法)이라고도 부릅니다.

 

질문 내용은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결혼했으나 후사가 없이 죽어 둘째가 형수와 살았고 그런 식으로 일곱째까지 모두 형수와 살았지만 후사가 없이 죽었고 그 여인도 죽었는데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돼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둘로 나눠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20,34-36) 말하자면,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은 현세의 일이고 저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이라는 표현은 죽은 다음에 부활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태오복음이나 마르코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나옵니다.(마태 22,30; 마르 12,25 참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루카 복음사가가 죽은 이들이 모두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들” 곧 의인들만 부활한다고 믿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 루카 복음사가는 “의인들이 부활할 때”(루카 14,14)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루카 복음사가가 쓴 사도행전에서는 “의로운 이들이나 불의한 자들이나 모두 부활하리라는 것”(사도 24,15)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따라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또 “의인들이 부활할 때”라는 표현은 의인들만 부활한다는 뜻이 아니라 의인들은 하느님의 참 생명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전반적인 풀이입니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20,36)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모든 사람의 부활은 이어오는 예수님 말씀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20,37-38)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킬 지도자로 모세를 선택하시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탈출 3,6)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죽은 이스라엘의 성조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라고 밝히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모세가 이미 죽었지만 부활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암시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바로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가이들의 질문에 결정적인 답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20,41-44)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어찌하여 사람들이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20,41) 사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이사 11,1-2; 예레 23,5-8; 미카 5,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라는 다윗의 시편(시편 110,1)을 인용하시면서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하고 물으신 것입니다.(20,42-44)

 

예수님의 이 질문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실은 다윗이 ‘주님’이라고 부른, 다윗보다 훨씬 위대한 분임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이 기사를 통해 예리코의 소경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또 “주님”이라고 부른 것과 연관지어(루카 18,35-43) 메시아로 오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 다윗보다 훨씬 위대한 ‘주님’이심을 부각하려고 했다고 성경학자들은 풀이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죽은 이들의 부활, 그리고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이 두 가지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따라서 루카 복음사가가 속해 있던 공동체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사실 죽은 이들의 부활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또 그리스도 곧 구세주로 번역되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단지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이 ‘주님’이라고 부른 분, 곧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밑바탕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후 예수님과 적대자들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고조돼 가는 시점에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 되는 두 주제, 부활 신앙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함으로써 그의 공동체에 신앙의 기초를 더욱 다지려고 했다고 말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신자라고 자처하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차례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까? 우리는 나자렛의 예수님을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그 믿음을 우리는 무엇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7월 15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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