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요시야 임금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신명기의 이 말씀은 복음에서도 등장합니다.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가?’ 묻는 이에게 예수님은 이 구절로 대답하십니다(마태 22,34-40; 마르 12,28-34; 루카 10,25-28). 하느님을 전 존재로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구약성경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 중 하나를 요시야 임금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열왕기와 역대기는 모두 공통된 평가로 시작합니다. “그는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으며, 자기 조상 다윗의 길을 따라 걸어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다.”(2열왕 22,2; 2역대 34,2) ‘다윗의 길’, 곧 주님의 계명과 규정을 따르는 길은 솔로몬 이야기부터 등장했던 말입니다 (1열왕 2,3-4; 3,14; 8,25; 참조 1열왕 11,33.38; 2열왕 22,2; 2역대 11,17; 17,3; 34,2). 열왕기는 이러한 평가를 더하고 있습니다. “요시야처럼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온 임금은, 그 앞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나오지 않았다.”(2열왕 23,25) 여기서 우리는 신명기와 작은 차이를 발견합니다. ‘사랑하라.’는 말이 ‘돌아온다.’는 말로 바뀌어 있습니다. ‘돌아온다.’(히브리어 shub)는 말은 ‘가던 길을 바꾸어 주님께로 향한다.’ 곧, ‘회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 그 길에 대해 열왕기는 율법의 준수라는 원칙을 말하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향해 온 마음을 돌려야 함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사실, 요시야(주님께서 구원하신다) 임금이 처음부터 ‘주님의 계명과 규정’을 따라 산 것은 아닙니다. 그가 임금의 자리에 오를 때, 유다왕국은 아시리아 제국의 영향 하에 있었습니다.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된 그가 마음을 돌려 주님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역대기는 그가 통치 8년 곧 열여섯 살부터 ‘조상 다윗의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2역대 34,3). 스무 살이 되자 그는 ‘종교정화’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의 통치 18년, 마침내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고 주님께 충실한 이로 변화하도록 이끈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말하기에 앞서 당시 역사에 대해 잠깐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721년)시키고 예루살렘을 포위해 위협하기(701년)까지 했던 아시리아 제국은 아슈르바니팔의 죽음(627년) 이후 내분을 겪으며 그 힘이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빌로니아를 중심으로 신 바빌론 제국(626-539)이 등장하고, 제국 외곽에서도 새로운 세력들이 형성되면서 점차로 제국을 압박하고 결국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를 무너뜨렸습니다. 지배 제국은 무너져가고, 새로운 제국은 아직 힘을 쓰지 못하는 이때, 속국의 지위로 전락했던 나라들은 독자적인 세력으로 일어서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유다왕국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요시야 임금의 개혁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요시야 임금의 개혁을 뒷받침하고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해준 사건이 기원전 722년에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성전 두루마리 발견 사건’(2열왕 22,3-23,3; 2역대 34,8-31)입니다. ‘주님의 집’(성전)을 보수하다가 대사제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를 서기관(임금의 비서)에게 주고 서기관은 임금 앞에 가서 그 책을 읽습니다. 임금은 ‘옷을 찢으며’ 주님의 분노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을 성전으로 불러 주님과의 계약을 갱신합니다. 그리고 그 ‘계약의 책’(2열왕 23,2) 또는 ‘율법서’(22,8)에 따라 강력한 종교개혁을 실행합니다. 종교개혁(2열왕 23,4-20)은 먼저 성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가나안의 신들)와 하늘의 모든 군대(아시리아의 신들)를 위해 만든 기물들’이 성전에서 끌어내져 불태워집니다. 이 개혁이 종교적인 것을 넘어서 정치적인 면까지 같이 이루어졌음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개혁은 성전 밖으로 나아가 실생활에서 백성을 현혹하던 우상숭배를 배척하는 운동으로 이어집니다. ‘몰록, 태양신, 아스타롯, 크모스, 밀콤, 아세라’ 등 우상들을 파괴하고 ‘산당, 제단’ 등 우상숭배가 행해지던 곳들은 재를 뿌려 부정하게 만들어 다시는 기능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아시리아 제국의 행정구역에 속하던 옛 북왕국의 지역(베텔, 사마리아)에까지 개혁이 시행됩니다. 개혁을 위한 여정을 마친 요시야는 남왕국의 백성들만이 아니라 북왕국의 유민들까지 모두를 주님 이름으로 불러 모아 파스카 축제를 지냅니다(2열왕 23,21-23; 2역대 35,1-19). [우상숭배의 배척과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열정의 강조는 신명기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성전에서 발견된 두루마리’를 신명기의 핵을 이루는 신명 12-26장(일명 ‘원신명기’)일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을 발견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에서만 행해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내 삶의 모든 것, 사회 · 정치 · 문화까지 하느님 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그것은 나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넘어서 내 영역을 넘어서는 곳까지 그 영향이 닿아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 돌아서는 길,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는 것’이라는 말은 삶의 전 차원이 그렇게 변화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종교적인 차원에만 머물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언급이나 행동에 반발하는 이들은 잘 들어야 합니다.] 요시야 임금의 개혁은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임금의 갑작스런 죽음(609년, 2열왕 23,28-30; 2역대 35,20-25)은 이 모든 노력을 되돌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훌다 예언자의 말처럼 바빌론의 군대에 모든 것이 파괴되고 나라는 멸망합니다(587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를 떠납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한 어둠의 시대, 하지만 주님은 예언자들을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새로운 날을 준비하십니다. [2018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