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90)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루카 24,13-35)
말씀과 성체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 -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이야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말씀(성경)과 성찬례에서다. 그림은 렘브란트작, 엠마우스에서의 만찬. [CNS 자료사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이야기는 네 복음서 가운데서도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대표적인 부활 발현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날”(25,13), 그러니까 여자들이 빈 무덤을 보고 제자들에게 돌아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이야기하던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가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만, 그들은 눈이 가리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25,13-16) 한 스타디온은 약185m, 예순 스타디온은 약 11㎞의 거리에 해당합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11㎞ 정도 떨어진 마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느냐고 물으시자 클레오파스라는 제자가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반문합니다. 클레오파스의 반문은 예수님의 재판과 십자가 처형이 예루살렘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큰 사건이었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재차 물으시자 그들이 이야기를 꺼내는데 바로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24,19)로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되던 분이었는데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십자가형에 처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난 지 벌써 사흘째가 됐다는 것입니다.(24,19-21). 정리하면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말씀과 행동에 힘이 있는 예언자로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으로 기대했는데 그만 십자가형을 받아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사흘째가 됐다는 표현에는 그들이 바라던 기대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체념과 좌절감이 묻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반전의 조짐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들과 함께 있었던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시신을 찾지 못하고 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분이 살아 계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다는 것입니다.(24,22-24) 두 제자의 말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믿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풍겨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질책에 가까운 탄식을 하십니다.(24,25-26) 예수님께서는 한 번은 갈릴래아에서(9,22), 또 한 번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도중에(18,32-33), 자신이 고난을 겪은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를 제자들에게 다시 일깨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 “모세와 모든 예언자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두 제자에게 설명해 주십니다.(24,27) 모세는 구약의 율법 즉 모세 5경(창세기ㆍ탈출기ㆍ레위기ㆍ민수기ㆍ신명기)을, 모든 예언자는 구약의 예언서 전체를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의 주요 부분인 율법서와 예언서뿐 아니라 시편까지도 포함하는 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을 설명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두 제자의 목적지 엠마오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더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그들은 예수님께 하룻밤을 함께 묵어 가시라고 청을 드렸고 예수님께서는 그 청을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 집에 들어가십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자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두 제자에게 나누어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봅니다.(24,28-31ㄱ) 두 제자는 길에서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식탁에 앉아 빵을 떼어 감사를 드리고 두 제자에게 나눠주실 때에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십니다. 그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하고 서로 이야기합니다.(24,31ㄴ-32)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본 다음에야 그들은 오는 길에서 느꼈던 것을 좀더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가서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고 루카 복음사가는 전합니다.(24,33-35) 생각해 봅시다 엠마오 이야기는 그 내용 자체도 감동적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도 여러 가지를 깊이 성찰하게 해줍니다. 우선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다만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들은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옴을 느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식탁에서 빵을 나누는 순간에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떼어 감사를 드리신 후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는 것이 바로 성찬의 식탁, 곧 성찬례를 나타낸다고 풀이합니다. 그 말씀은 성찬례 안에서 비로소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학자들은 두 제자가 뒤늦게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에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하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말씀의 식탁 곧 말씀 전례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또한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식탁(성경)과 성찬의 식탁(성찬례)은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이 살아 계시는 주님을 만나뵙는 중요한 두 자리입니다. 우리 삶에서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느낄 때, 주님께 대한 우리의 기대와 희망이 물거품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의지해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과 성찬례입니다. 말씀 안에서,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채워주시는 그분을 만나뵐 수 있고 새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도, 나를 버리고 떠나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2월 16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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