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정경 목록 성경을 펼치면 가장 먼저 목차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성경 목차는 다시 여러 하위 항목들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가장 크게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오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약 성경은 복음서, 사도행전, 서간문들, 요한 묵시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권수는 각각 구약이 46권, 신약이 27권입니다. 한 권의 성경에 담겨있는 73권 책의 목록, 그것을 우리는 정경(正經: Canon)이라고 합니다. 정경은 원칙이 되는 ‘규범’이나 ‘척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목록을 정경이라 칭하는 것은, 성경이 하느님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인의 규범과 척도를 제시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정경 목록은 어떻게 확정되었을까요? 규범과 척도를 제시하는 정경 목록이 확정되기까지에는 긴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구약 성경은 처음에는 히브리어로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많은 수가 외국에서 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원전 3~1세기경, 알렉산드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히브리어 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번역 작업에는 모두 70명(또는 72명)의 학자들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놀라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70명의 학자들이 70일 동안 각자 번역을 한 후에, 번역본을 서로 비교해 보았더니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일치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70이라는 숫자로 인해서, 히브리어 성경의 최초 번역본인 그리스어 성경을 70인역 성경이라고 부르고 로마숫자 LXX(70)로 표기합니다. 그런데 번역 과정에서 히브리어 성경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당시 성경 말씀으로 인정되고 있었던 부분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70인역에 포함시켰는데, 이를 제2경전이라고 합니다.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상·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테르기 일부와 다니엘서의 일부가 제2경전입니다. 이러한 제2경전을 대하는 입장에 따라 가톨릭, 유다교, 개신교의 정경 목록에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새로운 번역 성경인 70인역과 기존의 히브리어 성경은 기원후 1세기까지 함께 사용됩니다. 하지만, 당대의 공용어와도 같은 그리스어로 번역된 성경이 히브리어 성경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자, 유다인들은 기원후 1세기에 ‘얌니아’라는 곳에서 회의를 열고, 하느님의 말씀은 히브리어 이외의 다른 어떤 언어로도 표현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제2경전을 제외한 히브리어 성경만 인정하는 정경 목록을 확정짓게 됩니다. 그럼 개신교는 어떠했을까요? 이보다 훨씬 후대인 1517년에 루터가 종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루터 또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70인역 성경에 담긴 제2경전을 외경(外經)으로 간주하고, 70인역이 아닌 히브리어 성경의 정경 목록을 개신교의 정경 목록으로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정경 확정에 대응하여 가톨릭 교회는 1546년 4월 8일, 70인역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구약성경을 46권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가톨릭, 유다교, 개신교의 정경 목록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의 첫 페이지에 담긴 목차인 정경 목록은 이렇듯 긴 시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우리가 읽고 만나는 성경 말씀에는 많은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이 주님의 말씀을 조금 더 소중한 마음으로 마주하기를 희망합니다. [2018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인천주보 4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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