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성경의 저자 성경은 하느님 말씀을 담아놓은 책입니다. 성경이 하느님 말씀이기에 거룩하고 고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하고 고귀한 하느님 말씀은 성경이라는 그릇에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담기게 되었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저자를 통해서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저자는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하느님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느님 영에 의해서, 하느님 뜻에 따라서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영에 의해서 인간이 기록하였다는 것이 인간은 무의식 가운데 혹은, 탈혼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록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를 바탕으로, 저자의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 정치, 사회적 요소들의 영향 아래서 당대의 언어로 하느님의 말씀을 신학적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분명 인간 저자가 기술하였지만, 인간 저자를 움직인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인간 저자와 하느님의 공동작업을 통해서 완성된 책입니다. 우리가 어떤 글을 읽을 때,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 파악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저자의 의도를 올바르게 파악할 때, 우리는 성경에 담긴 하느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저자의 의도 파악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기록된 시기”와 “성경이 전하는 시기”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이야기를 살펴봅니다(창세 1,1-2,4ㄱ). 창세기의 이야기는 “한 처음에”(창세 1,1)로 시작됩니다. 분명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시간은 “한 처음”이라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창세기는 “한 처음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후대에 인간 저자가 살고 있던 당시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생겨나는 시간 차이를 고려하면서 읽는 것이 바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시기”를 고려하면서 읽는 것은 성경이 저술된 당시 시대 배경을 이해하면서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신학적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이는 인간 저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으로 “비평적 독서(Lectio critica)”라고 합니다. 반면에 “성경이 전하는 시기”를 고려하면서 읽는 것은,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오늘날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전해주는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읽는 것을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성경을 읽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요? 비평적 독서는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중요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연구가 아닙니다.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읽고 묵상하면서 지금의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풀어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보다 앞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하느님을 체험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서 인간 저자를 통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하느님은 수천 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만을 염두에 두시고 인간 저자에게 영감을 제공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본문이 기록되기 이전과 이후에 살아갈 당신 백성 모두를 염두에 두시고 본문을 작성하셨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만나는 가슴 설레는 여정이 이제 시작됩니다.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2018년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인천주보 4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