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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마타티아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7 조회수7,620 추천수0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마타티아스

 

 

페르시아 시대는 마케도니아 출신의 위대한 임금, 알렉산드로스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새로운 제국은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헬레니즘, 그리스 문화와 아시아 문화의 융합으로 탄생한 이 새로운 문화는 지중해 지역을 지배해 갔습니다. 그리스 문화는 공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언어와 철학, 건축과 스포츠까지 삶의 곳곳에 파고들었습니다. 팔레스티나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사망 후 제국은 셋으로 쪼개졌습니다. 팔레스티나 지역은 처음에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지만, 이후 시리아-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에는 혼란이 시작됩니다. 성전과 대사제를 중심으로 나름의 자치를 이루고 있던 유다인들 내부의 문제가 이 혼란의 한 축을 형성했습니다. 대사제직을 찬탈하는 이들의 등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에는 시몬이라는 사람이 대사제를 흔들더니, 야손이 시리아 임금에게 뇌물을 약속하고 자신의 형이자 대사제인 오니아스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도 메넬라오스라는 또 다른 불한당에게 몰려 도망자가 됩니다. 잠시 대사제직에 앉았던 메넬라오스는 리시마코스를 자신의 자리에 앉혔지만, 그가 살해되자 다시 대사제직을 차지합니다(2마카 3장-4장).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다스릴 때는 유다인들의 생활방식과 종교가 용인되었지만, 셀레우코스 왕조는 점차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기원전 169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성전을 약탈했습니다(1마카 1,20-24; 2마카 5,11-21). 이에 그치지 않고 2년 뒤 강력한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해 도시를 약탈하고 성전 서쪽 언덕에 주둔합니다. 그러나 식민지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슬픔’(1마카 1,25.39.40)과 ‘수치’(1마카 1,28.40)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안티오코스 임금은 이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국 전체에 고유의 관습과 종교를 버리고 그리스식으로 바꾸라는 칙령을 내리며, 이를 ‘따르지 않는 자는 사형’이라고 선언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예식의 중단, 할례 금지, 율법서 소지나 율법 준수자에 대한 처벌 등, 유다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곳에 그리스의 신상들을 세우고 거기서 율법이 금지한 돼지와 부정한 짐승을 희생제물로 바치게까지 합니다(1마카 1,45-50). 마침내 기원전 167년 12월 8일,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1마카 1,54), 곧 ‘올림포스의 제우스’(2마카 6,2) 신상을 세우기에 이릅니다. 일부 변절자들이 나왔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합니다. 율법학자 엘아자르의 순교(2마카 6,18-31)와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2마카 7,1-41) 이야기가 대표적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던 중에 사제 마타티아스가 살던 모데인이라는 마을에도 배교를 강요하는 관리가 도착합니다. ‘성읍의 지도자이며 존경을 받는 큰사람’(1마카 2,17) 마타티아스에게 회유의 말이 건네집니다.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당신이 앞장서서 왕명을 따르라. 그러면 임금의 벗이라는 영예와 금은을 받고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다.’(2,17ㄴ-18)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2,20) 그런데 한 사람이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왕명에 따라 제물을 바치러’ 앞으로 나갑니다. 이를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라’(2,24) 달려가 그를 죽이고, 관리마저 죽입니다. 그는 거기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따라나서라’(2,27)며 산으로 달아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달아난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을 따라 많은 이들이 모여듭니다. 그런데 슬픈 소식이 들려옵니다.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광야로 달아난 이들이 안식일 법을 지키려 시리아 군대의 공격 앞에서도 대항하지 않고 그대로 죽었다는 소식(2,29-38)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타티아스와 그를 따르는 이들은 안식일이라도 싸우겠다는 다짐을 합니다(2,41). 하시드인들과 ‘재난을 피해 달아난 이들’이 그들의 무리에 합류하게 되고 그들은 군대를 조직하여 저항 활동에 들어갑니다. ‘죄인들, 무도한 자들,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고 우상의 제단들을 무너뜨리고 아이들에게 할례를 강제합니다(2,44-48).

 

마타티아스는 죽음을 맞기 전에 유언을 남깁니다(2,49-68). ‘아브라함부터 다니엘까지 율법에 충실한 조상들이 성공하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여, 율법을 굳게 지키는 자가 되라’, ‘이민족과 맞서 싸우며 복수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는 기원전 166년 봄에 사망했습니다. 그 아들들이 뒤를 이어 활약합니다.

 

성전의 침탈과 대사제직의 혼란에 대해 전하는 마카베오 하권의 이야기에는 헬리오로도스의 성전침탈 사건(2마카 3,7-40) 때, 백성 전체가 기도한다거나 ‘황금갑옷을 입은 기사와 두 젊은이’가 갑자기 등장하여 성전에 무단히 들어온 헬리오로도스를 징벌하는 등, 하느님의 개입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마카베오 상권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없습니다. 마타티아스의 이야기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열정으로 불타는 그의 모습 속에는 이미 하느님의 활동이 담겨 있습니다.

 

마타티아스가 살던 시대는 급변의 시대였습니다. 그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했습니다. 조용하던 시골노인에서 투사로 변신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 법을 기꺼이 포기하는 과감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은 훨씬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들을 쫓다가 신앙을 뒤로 밀어내는 이들을 만납니다. 변화를 거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와 발전을 따라가려면 포기하고 버려야 할 것들이 있지만, 길을 찾으려면 지켜야 할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신앙은 걸림돌이 아닙니다. 신앙은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며 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주춧돌이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준점입니다. 이 신앙의 길을 놓친다면 변화의 바람 속에서 인생의 길마저 놓칠 것입니다.

 

[2019년 1월 27일 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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