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창조 이야기(창세 1-2장)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꺼운 성경책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이후에 하느님께서 엿새에 걸쳐 세상을 창조한 이야기를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세상의 기원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세상의 기원이 더 합리적이고 더 맞는 이야기처럼 다가옵니다. 그러니 우리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지요. 이어서 등장하는 인류의 첫 인간, 아담과 하와 이야기, 에덴동산 이야기 등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이게 진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하는 다양한 의문과 질문이 꼬리를 이어갑니다. 이러한 의문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럼 성경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것을 믿으라고 가르치는 것일까요? 성경은 과학책이나, 신문 기사가 아닙니다. 성경은 신앙의 책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것을 보도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들이 창세기를 기록하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한 것은 명확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하는 물음이 아닌 “세상을 누가 창조하였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주고자 한 것입니다. 세상과 우주의 기원에 대한 많은 과학 이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과학 이론과 논쟁을 벌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그 시작점에 하느님께서 계셨고, 하느님께서 그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왜 성경은 다르게 이야기합니까?” 하는 물음에 답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세상을 창조한 분이 하느님이십니다.”라는 믿음을 고백하는 신앙의 책입니다. 세상의 창조 이야기를 살펴보면, 하느님께서 엿새에 걸쳐서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알려줍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싶은 것일까요?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세상의 창조를 하신 분,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엿새라는 시간 동안 창조하셨다고 창세기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 창조의 마지막에 위치한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냥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입니다(창세 1,26-27). 창조의 정점에 인간 창조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창조 이야기는 사람을 위해서 삼라만상이 창조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이렇듯 창세기의 저자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우리를 위해서 창조하셨음을 알려줍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위해서 빛과 어둠, 해와 달과 별들과 세상의 모든 식물과 짐승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 자리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삼라만상 모든 것, 그것은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창조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창조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어떠한가요? 만족스러우신가요? 아니면 부족함이 느껴지나요? 때로는 한없이 부족하게 보이는 우리의 삶의 자리입니다. 하지만, 불편하고, 우리의 눈에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를 위해서 창조된 세상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우리의 모습 안에 ‘하느님의 닮은꼴’이 담겨져 있습니다. 불만과 불평이 아니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서 나를 위해 만들어주신 세상이라는 신앙의 눈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를 바라보고, 우리 안에 담겨진 하느님의 닮은꼴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 옛날 창세기의 저자가 자신의 삶의 자리로부터 하느님 창조의 힘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습에서 하느님 닮은꼴을 바라봤던 것처럼. [2019년 2월 3일 연중 제4주일 인천주보 4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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