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율법과 돼지 농경사회에서 돼지는 유익한 짐승이었다. 강한 번식력으로 고기를 끊임없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에선 다산과 통하는 축복의 가축이었다. 유럽에서도 환영받던 동물이었다. 독일에선 돼지족발 요리가 전통음식이다. 스페인도 돼지 뒷다리를 훈제한 하몽이란 음식을 즐겨 먹는다. 로마인과 중국인도 돼지고기를 최고음식으로 꼽았다. 하지만 중동지역으로 가면 기피 동물이 된다. 저주의 짐승으로 바뀐다. 레위기는 부정한 동물로 선언했다.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 하지 않으므로 부정한 것이다. 이런 짐승의 고기는 먹어도 안 되고 주검에 몸이 닿아도 안 된다. 그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레위 11,7-8).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돼지고기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다. 차츰 그들은 죄악시했다. 먹거나 만지면 부정한 사람이 되어 성전출입에 제재를 받았다. 돼지로선 억울한 일이다. 어찌하여 이렇듯 몹쓸 짐승으로 판단되었을까? 생활환경과 연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목민은 떠돌며 살아야 한다. 그런 환경에서 돼지사육은 불가능하다. 소와 양은 풀을 먹지만 돼지는 곡식을 먹는다. 소처럼 경작에 이용되는 것도 아니고 염소나 양처럼 젖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먹다가 죽는다. 돼지를 기른다는 건 사치였던 것이다. 그런데다 돼지는 땀샘이 거의 없기에 체온조절이 안 된다. 더운 날씨엔 배설물 더미에 뒹굴어서라도 열을 식혀야 한다. 더러운 짐승으로 낙인찍힌 이유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맛있다. 맛을 아는 이들은 어떻게든 먹고 싶어 한다. 특단의 금지조치를 취해야 했다. 율법에서 돼지를 정죄한 이유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 가나안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었다. 성경에도 돼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돌아온 탕자는 객지에서 돼지치기를 했다(루카 15,15). 예수님께서 악령을 쫒아내시자 그들이 돼지 떼 속으로 갔다는 기록도 있다(마르 5,13). 유대인만 먹지 않았던 것이다. 초대교회는 돼지고기를 반대하지 않았다. 구약의 영향으로 논란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기 음식 멍에를 과감하게 벗었다. 사도행전엔 초대교회 선언문이 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사도 10,15) 2016년 기준으로 대략 10억 마리가 사육되며 절반이 중국산이라 한다. 2위는 미국이다. 중국에선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우리나라도 꿈에 만나면 다음날 횡재한다는 속설이 있다. 돼지는 의외로 지능이 높다. 개와 고양이보다 높다고 한다. [2019년 2월 17일 연중 제6주일 가톨릭마산 8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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