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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함께 읽기: 창조와 구원 그리고 일곱 봉인 개봉 환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2 조회수8,987 추천수0

[요한 묵시록 함께 읽기] 창조와 구원 그리고 일곱 봉인 개봉 환시 (1) 4장 1절-5장 14절

 

 

머리말(1,1-8)과 구원받기 위한 회개를 강조하는 일곱 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형태의 ‘예언 부분’(1,9-3,22)에 이어 선과 악 사이의 최후 결전과 심판을 강조하는 세상 종말에 대한 환시 · 심판 · 새 세상에 대한 환시를 전하는 ‘묵시 부분’(4,1-22,5)이 이어집니다. 1-3장까지 묵시록의 저자 요한의 위치는 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4장부터는 천상으로 장소가 옮겨지고, 환시와 더불어 본격적인 묵시의 내용이 전개됩니다. 4-5장은 이어지는 내용 전체의 입문 구실을 하는데 4장은 창조에 관한 환시를 보여주고, 5장은 구원에 관한 환시를 알려줍니다. 6장 1절-8장 5절은 어린양이 일곱 봉인들을 뜯는 환시를 보여줍니다.

 

 

천상 어좌와 경배의 환시를 본 요한

 

4장 1-21절에서 천상으로 초대된 요한은 나팔 소리같이 울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큰 목소리를 또다시 듣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며 성령께 사로잡힌 요한은 천상 어좌와 경배의 환시를 봅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이란 표현은 묵시록에서 열두 번 나오는데(4,2.9.10; 5,1.7.13; 6,16; 7,10.15; 19,4; 20,11; 21,5) 하느님의 이름을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좌’는 천상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로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4장 2-11절은 하늘 성전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보석들을 통해 하느님의 속성, 곧 거룩함과 정의와 자애를 알아차릴 수 있을 뿐입니다. 벽옥은 투명한 보석으로 하느님의 거룩함을 상징하고, 붉은 보석인 홍옥은 손에 들고 있으면 붉은 숯불을 쥐고 있는 듯하여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정의를 상징하며, 무지개 빛깔이 도는 취옥은 노아의 계약에서 보인 하느님의 자애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느님의 어좌 둘레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스물네 개의 어좌에 앉아 있습니다. 스물넷이라는 수는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열두 사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신약의 그리스도 교회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계승하는 참된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 백성을 대표하는 이들이 바로 천상의 스물네 원로들인 것입니다. 한편 스물넷은 성전에서 차례로 예배를 담당하는 사제들의 스물네 조(1역대 24,3-19)를 떠올리게 합니다. 곧 묵시록의 원로들은 성전에서 봉직하는 사제들처럼 하느님을 예배하는 역할을 맡습니다(묵시 5,8-11; 11,16-18; 19,4). 원로들이 입고 있는 흰옷은 거룩한 사제복이요, 그들이 쓰고 있는 금관은 통치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한은 어좌 앞에서 타오르는 일곱 횃불을 하느님의 일곱 영과 동일시하는데, 이 일곱 영은 한 분 성령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하느님을 모시는 최고위 일곱 천사(유다교 전승에 따르면,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 라구엘, 사리엘, 르미엘의 일곱 대천사: 외경 1에녹 20,1-8)로 이해하는 것이 더 어울립니다.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 있는 사자, 황소, 사람 얼굴, 독수리 같은 여섯 개의 날개를 지닌 네 생물에 대해 알려줍니다. 사자는 고고함, 황소는 강함, 사람 얼굴은 슬기로움, 독수리는 빠름을 상징합니다. 이 네 생물에게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렸다는 것은 온 세상을 항상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네 생물은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이사 6,3 참조)라고 창조주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심을 최상급의 삼중 형태로 찬양합니다. 삼중 찬양에 이어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이라고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영원하심을 노래합니다. 이제 스물네 원로가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제 그들은 하느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겠다는 표시로 자신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칩니다.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10-11절)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찬탈한 ‘주님이요 저희 하느님’이라는 신적 칭호를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양을 통한 구원의 환시(5,1-14)

 

고대 근동의 책은 파피루스 또는 양가죽을 이어 만든 두루마리를 원통 막대에 달아 만 다음 끝부분을 마감하고 인장을 찍는 봉인을 함으로써 공적 성격을 더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들린 두루마리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닙니다. 안팎으로 글이 적혀 있고, 일곱 번 봉인되었다는 것입니다. ‘글이 안팎으로 적혀 있다’는 것은 계시의 내용이 충만하고 결정적이라는 뜻이요, ‘일곱 번 봉인되었다’는 것은 그 내용이 완전히 밀봉되어 감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거나 들여다보기에 합당한 이가 없음에 슬피 우는 요한에게 원로 한 분이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요한은 어좌와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신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봅니다. 이 환시는 파스카 신비를 계시하는데, 어린양이 살해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키고, 서 계신다는 것은 부활을 가리킵니다. 유다 지파 다윗 가문에서 난 사자가 어린양이십니다. 이제부터 어린양은 명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칭호로 나타납니다. 어린양의 일곱 뿔은 완전한 권능을, 일곱 눈은 완벽한 통찰력을 지녔음을 뜻합니다. 어린양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에게서 두루마리를 건네받으심으로써 권위와 더불어 소명을 받습니다. 어린양의 발 앞에 엎드린 네 생물은 하느님을 모시는 커룹들이고, 스물네 원로는 그리스도 교회를 대표하는 이들입니다. 네 생물과 원로들은 ‘성도들의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이 대목은 지상 교회가 천상 전례에 동참하는 것을 일깨워주며, 사도신경의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어지는 ‘새 노래’에서 드러나듯 모든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쳤으며,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시고 땅을 다스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천사들이 ‘새 노래’에 대한 응답으로써 살해된 어린양께 ‘권능, 부, 지혜, 힘, 영예, 영광, 찬미’의 일곱 찬양을 노래합니다. 이어서 모든 만물과 네 생물과 원로들도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양을 드립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9년 3월호, 조성풍 신부(사목국장)]

 

 

[요한 묵시록 함께 읽기] 창조와 구원 그리고 일곱 봉인 개봉 환시 (2) 6장 1절-8장 5절

 

 

지난 호에 이어 살펴보는 요한 묵시록 6장 1절-8장 5절에서는 어린양이 일곱 봉인들을 뜯는 환시와 네 천사와 선택된 이들의 무리에 대한 환시를 보여줍니다.

 

 

여섯 개의 봉인 개봉 환시

 

6장 1-15절에서는 어린양이 일곱 개의 봉인 가운데 여섯 개의 봉인을 뜯는 환시를 보여줍니다. 첫째 봉인을 뜯자 활을 가지고 흰말을 탄 기사가 화관을 받고 승리를 거두려고 나갑니다. 흰색과 화관은 승리를 가리킵니다. 둘째 봉인을 뜯자 땅에서 평화를 거두어 가는 권한을 받은 붉은 말을 탄 기사가 큰 칼을 받습니다. 붉은색과 칼은 전쟁과 파괴를 뜻합니다. 셋째 봉인을 뜯자 손에 저울을 들고 검은 말을 탄 기사가 등장합니다. 검은색은 기근을 뜻하고, 저울은 양식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을 때 일정한 양을 먹거나 배급하기 위해 필요합니다(참조: 레위 26,26; 에제 4,16). 넷째 봉인을 뜯자 푸르스름한 말을 탄 죽음이라는 이름의 기사가 등장합니다. 그 뒤에는 저승이 따르고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칼과 굶주림과 흑사병과 들짐승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다섯째 봉인을 뜯자 하느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한 증언 때문에 살해된 이들(순교자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흘린 피에 대한 심판과 복수를 청합니다. 그러나 각자에게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희고 긴 겉옷이 주어지고, 죽임을 당할 이들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 더 쉬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여섯째 봉인을 뜯자 큰 지진, 해와 달의 변화, 하늘의 별들의 떨어지고 산과 섬이 자리를 잃는 등의 재앙이 일어납니다.

 

 

네 천사의 환시와 선택된 이들의 무리에 대한 환시

 

7장 1-17절은 처음 여섯 개의 봉인을 뜯는 것(6장)과 마지막 일곱째 봉인을 뜯는 것(8장) 사이에 네 천사의 환시와 선택된 이들의 무리에 대한 환시를 보여줍니다. 이 두 환시를 통해 주님께서는 닥쳐올 재앙과 심판으로부터 당신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시겠다는 구원 의지를 드러내십니다.

 

① 종들의 이마에 구원의 인장을 찍어 주시는 하느님

 

7장 1-8절은 결정적 심판과 구원의 때를 알리는 마지막 일곱째 봉인을 열기 전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인 교회를 구성하는 당신 종들의 이마에 구원의 인장을 찍어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한은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네 바람을 붙잡고 있는 환시를 봅니다. 네 천사는 하느님의 명을 받아 곧 세상에 재앙을 내리려 하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온 다른 천사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자신이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아무것도 해치지 말라고 외칩니다. 하느님의 인장을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께 속한다는 것과 하느님에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세례를 가리킬 때 인장 또는 인호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2코린 1,21-22 참조). 그리스도인은 세례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에게 소속되는 동시에 구원의 보증을 받습니다. 4절의 내용을 보면 하느님의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입니다. 144,000은 12 × 12 × 1,000이고, 숫자 12는 각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를, 1,000은 하느님께 속한 숫자이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큰 수를 가리킵니다. 곧 ‘십사만 사천’은 교회를 통하여 엄청나게 많은 무리가 하느님께 소속되어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열두 사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 교회가 열두 지파의 옛 이스라엘을 완벽하게 계승하는 새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뜻합니다(참조: 로마 9-11장; 갈라 6,16; 에페 2,11-22; 1베드 2,9). 이처럼 ‘십사만 사천’이라는 수는 실제 수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사이비 종파에서 주장하듯 구원받을 사람들이 144,000명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천지 창조부터 종말까지 구원받을 사람의 수가 겨우 144,000명뿐이라면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 아닐까요? 요한은 열두 지파를 숫자와 더불어 일일이 나열합니다. 이는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을 계승하는 새 이스라엘인 교회 공동체가 이마에 구원의 인장을 받고 박해를 이겨내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천상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장엄하게 묘사하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나열한 지파의 목록에는 두 가지가 특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메시아가 나오기로 된 유다 지파가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고(참조: 창세 49,9-10; 묵시 5,5),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 불충한 단 지파(판관 18장)대신 요셉의 아들인 므나쎄 지파가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② 구원의 인장을 받고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의 삶(7,9-17)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 서있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라고 외치는데, 이는 구원과 승리의 원천과 주체가 자신들이 아니라 하느님과 어린양이심을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천사들이 순교자들의 기도에 아멘으로 응답하고서 ‘찬미, 영광, 지혜, 감사, 영예, 권능, 힘’의 일곱 찬양을 노래합니다. 이제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한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에게 소속된 선택된 사람들로서 천상 전례에 참여하며, 더 이상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고, 어떤 열기도 내리쬐지 않을 것이며,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 ‘큰 환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박해라는 시련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붉은 피로 옷을 빨아 희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 모순된 일이지만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속죄된 사람들이지만, 어린양의 피로 자기 옷을 빨아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곱째 봉인과 금 향로의 환시

 

8장 1-5절에서는 일곱째 봉인과 금 향로와 관련된 환시를 봅니다. 어린양이 종말을 시사하는 일곱째 봉인을 뜯자, 반시간가량 침묵이 흐릅니다. 여기서 침묵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대 재앙에 앞서 공포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에게 일곱 나팔이 주어집니다. 이어서 다른 천사 하나가 금 향로를 들고 나와 향 연기와 더불어 모든 성도의 기도를 하느님께 바칩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9년 4월호, 조성풍 신부(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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