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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이것이 이름들이다(탈출 1,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8 조회수7,656 추천수0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이것이 이름들이다.”(탈출 1,1)

 

 

우리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세상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이사악과 야곱/이스라엘에 이르는 이스라엘 성조들의 역사를 만나보았습니다. 그 역사는 찬란한 광명만이 가득했던 역사가 아니라, 가족 안의 분열과 갈등, 긴장, 불화의 대물림 속에서 전해진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심과 집념 속에서 함께하신 하느님의 이끄심과 섭리라는 신앙 이야기도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 대단원의 막이 내린 곳은 의아하게도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닌, 이집트 땅이었습니다. 왜 이집트였을까요? 이미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은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면서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는 못하였습니다. 기억이 나실까요? 개인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이 함께 하느님을 체험하였던, 원체험(原體驗)의 시작은 바로 탈출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년)를 겪으면서 신앙의 복원 지점으로 삼은 원체험 사건이 바로 탈출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체험한 원체험 사건의 이야기가 탈출기에서 펼쳐집니다.

 

이스라엘의 성조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에게, 그리고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전해준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손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창세 17,6; 26,24; 28,14). 그 약속은 실현이 되었을까요? 실현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탈출기는 처음부터 과감하게 하느님의 그 약속이 실현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합니다: “야곱과 함께 저마다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의 아들들 이름은 이러하다”(탈출 1,1). 우리말 성경에는 야곱의 이름이 먼저 등장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시작 합니다. “וְאֵלֶּה שְׁמוֹת(이것이 이름들이다).” 이를 통해서 탈출기의 저자는 탈출기가 창세기의 이야기와 분리된 이야기가 아니며, 앞선 창세기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줍니다. 또한 이름들을 나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흔 명이 함께 이집트로 들어갔으며(탈출 1,5),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탈출 1,7), 성조들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이 이제 구체적으로 실현됨을 알려줍니다. 창세기에서의 약속이 이제 성취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탈출기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탈출’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가장 먼저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집트를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이 전부일까요? 탈출기는 전체 4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탈출기 14장에서 갈대바다를 건너면서 이집트는 더 이상 탈출기의 배경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남은 3분의 2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이집트 배경이 아닌 광야와 시나이 산에서 펼쳐집니다. 탈출기를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출애굽기[出挨及記]”라고 불렀습니다. 한자에서 볼 수 있듯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탈출기의 영어식 이름은 “Exodus”입니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는데, ‘~로부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전치사 “εκ”과 ‘길’을 뜻하는 명사 “ὁδος”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Exodus는 “~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의미합니다. 단순하게 이집트를 벗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여정을 암시하여 줍니다.

 

무엇으로부터 벗어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집트에서 혹독한 작업과 핍박 속에서 살았습니다(탈출 1,11-14). 만약 이 책의 제목을 ‘이집트 탈출기’라고 불렀다면, 우리의 시선은 이집트에만 머물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하느님의 백성이 겪고 있는 모든 형태의 억압과 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느님의 품으로 나아가는 모든 움직임이 탈출 사건이라고 알려줍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건들, 사람들, 현상들. 그 모든 억눌림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품 안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초대의 책이 바로 우리가 만나게 될 탈출기입니다. 탈출기를 본격적으로 만나기에 앞서, 우리를 억압하며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마주하여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우리를 억누르는 것으로부터의 탈출을 하느님과 함께 준비했으면 합니다.

 

[2019년 4월 28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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