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그 주님이 누구냐?(탈출 5,2) 야훼 하느님께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구에게 알려주지는 않은 자신의 이름을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모세는 이 이름을 혼자서만 알고 덮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백성에게 가서 알려줍니다(탈출 4,30 참조). 이 말씀을 전해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무릎을 꿇고 경배합니다(탈출 4,31). 이렇듯 하느님의 이름을 알게 된 모세와 백성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듭니다. 하지만, 탈출기의 등장인물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탈출기 초반부에 등장하는 야훼 하느님의 강력한 저항 인물 파라오가 바로 그 예외적 인물이었습니다. 파라오가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난 후에 보인 반응은 “그 주님이 누구이기에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그 주님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이스라엘을 내보내지도 않겠다”(탈출 5,2). 파라오는 야훼 하느님의 계시 사건을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냅니다. 그의 이러한 무지함은 뒤에서 전개되는 열 가지 재앙 앞에서 “완고한 마음”으로 구체화됩니다(탈출 7,22; 8,11.15.28; 9,7.12; 34-35; 10,20.27).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강한 손”으로 완고한 마음을 지닌 파라오에게 표징을 내리십니다(탈출 6,1; 7-11). 이집트에 내려진 열 개의 재앙이 그것입니다. 재앙이 일어나는 모습을 살펴보면, 마지막 재앙을 제외하고 아홉 개의 재앙은 반복되는 주기를 보여줍니다: 1) “아침에 파라오에게 가거라”(탈출 7,14; 8,16; 9,13). 2) “파라오에게 가서”(탈출 7,26; 9,1; 10,1). 3)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탈출 8,12; 9,8; 10,21) 이렇게 반복되는 주기는 파라오의 몰락을 향해 점점 상승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재앙이 거듭될수록 점점 심해지는 표징 속에서도 파라오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큰 재앙이 닥치면, 파라오는 하느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듯한 행동을 합니다(탈출 8,4.21; 9,27-28; 10,8.16-17.24). 그러나 재앙이 그치면, 그는 다시 마음을 바꾸고 완고하게 야훼 하느님의 명령에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그렇게 아홉 번의 재앙이 지나간 후, 열 번째 재앙인 이집트 맏아들과 맏배의 죽음(탈출 12,29-36)이 내려지자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도 좋다고 허락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시 파라오의 마음은 달라져서 직접 병거를 갖추고 군사들을 거느리고 출정합니다(탈출 14,5-9). 파라오의 추격 가운데 하느님께서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시자, 그제야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이집트와 싸우신다”(탈출 14,25). “주님이 누구냐?”(탈출 5,2)고 묻던 파라오는 이제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시는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파라오와 함께 나온 이집트인들이 갈대 바다 한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하고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됩니다(탈출 14,27-28). 탈출기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줍니다. 그분의 이름, 그분의 능력, 이 모든 것을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 독자들에게 알려주고자 파라오의 입을 통하여 “그 주님이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고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야훼”이십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고집 때문에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폭정을 일삼는 폭군 파라오와는 다른 분이십니다. 파라오와는 달리 하느님은 지속되는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자유를 위한 투신과 헌신을 그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 주님이 누구냐?” 파라오의 이 질문은 우리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대답을 마련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을 파라오처럼 재앙을 내리시는 분으로, 또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시는 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탈출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야훼 하느님”, 그분은 우리에게 누구이십니까? [2019년 5월 26일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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