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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광야에서의 첫 걸음 - 배고픔과 목마름에 대한 투정(탈출 16-17)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11 조회수5,886 추천수0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광야에서의 첫 걸음 - 배고픔과 목마름에 대한 투정(탈출 16-17)

 

 

갈대 바다를 건너면서 야훼 하느님의 강한 손이 펼치는 힘을 직접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시작으로 모든 공동체가 함께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하느님의 권능을 통해 드러난 주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하느님만이 홀로 하느님이라는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탈출 15,1-18).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더 이상 이집트 파라오의 그늘에 머물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에게 과한 부역을 강요했던 파라오와 이집트는 더 이상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더 이상 이집트에서처럼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던 이들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저 시키는 일만 충실하게 하면 되었던 종살이에서, 주도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평생을 노예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인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억압과 속박의 땅인 이집트를 벗어나서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광야였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바로 안전하게 약속의 땅에 도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르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시간을. 그 긴 시간의 첫 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르 광야(탈출 15,22)에서 신 광야(탈출 16,1)에 이르기까지, 광야라는 낯선 공간에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주한 첫 번째 어려움은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물과 먹을 것이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었고, 먹을 빵이 없었습니다. 목마르고 배고픈데 자유인의 신분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런 기본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자 그들은 얼마 전까지 자신들의 삶의 자리였던 이집트를 떠올립니다. 비록 노역이 힘들기는 하였지만, 적어도 거기서는 먹을 빵과 마실 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에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그들은 목이 마를 때 하느님께 불평하고, 배가 고파도 하느님께 불평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유인의 신분은 필요 없고, 노예생활을 하더라도 먹고 마실 수만 있으면 좋겠다며 투정을 부립니다. 노예 생활의 관성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노예였다는 표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탈출 16,3). 고기 냄비 곁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야 주인입니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이 고기를 먹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빵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아니라, 노예였음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투정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말씀 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주시고(탈출 15,22-25; 17,1-7), 배가 고프다고 하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십니다(탈출 16,13-16).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요구에 응해주십니다. 하지만,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규정을 잘 지킬 것을 요구하십니다(탈출 15,26).

 

노예에서 자유인이 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자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보다 억압과 구속, 노역을 아직까지는 더 편하고 익숙하게 여기는 시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광야의 여정 속에서 더 깊이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이 되어가는 여정의 첫 걸음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관습과 습성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도전이었습니다. 그러한 도전에 대하여 하느님께 투정을 부리고, 하느님께 응답을 얻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여정을 걸어갑니다. 절대적으로 순명하고, 절대적으로 하느님의 가르침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투정도 부리고, 불만도 표현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어딘지 익숙한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줍니다. 광야같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내뱉는 우리의 투정도, 우리의 불만도 하느님 백성이 되어가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6월 9일 성령 강림 대축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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