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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하느님 은총의 정식(탈출 34,6-7)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7 조회수6,007 추천수0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하느님 은총의 정식(탈출 34,6-7)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하느님의 계명에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그러한 백성을 대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물론, 심판과 징벌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십니다. 심하게 분노하며 모든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겠노라고 말씀도 하십니다(탈출 32,10). 하지만, 하느님은 그렇게 분노만 드러내시지 않습니다. 모순적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모세에게 드러내셨던 것처럼(탈출 3,14),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백성을 향해 하느님의 본질을 계시하십니다. 은총이 가득한 하느님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시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탈출 34,6-7).

 

바로 “은총의 정식”이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라는 본성이 직접적으로 계시되고, 하느님의 자비가 강조되는 구절에서 반복,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드러나고 강조되는 하느님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우선 자비입니다. 자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의 모태(母胎)를 뜻하는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갖습니다. 구약성경이 이야기하는 자비는 태아를 품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기인합니다. 뱃속의 아이를 품듯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품어주시는 행위를 자비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음으로는 너그러움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너그럽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은총과 호의를 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라고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은 하느님의 어머니적 사랑과 하느님이 은총과 호의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분노에 더딘 하느님, 이 표현은 조금 재미있습니다.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코가 길다”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 의아해할 수 있는데요, 혹시 어린 시절의 만화에서 화가 난 사람을 표현할 때, 코에서 하얀 연기가 나오는 그림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코가 길다는 것은, 코가 길기 때문에 화를 표현하는 연기가 밖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하느님께서 화를 내기를 더디게 하신다는 표현인 것이지요.

 

다음의 특징은 자애와 진실입니다. 자애라는 표현은 서로 연결되어 동감하고 연대하는 행위를, 진실은 참되고 견고함을 의미합니다.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는 것은 그 방향성이 인간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분노와 심판, 징벌이 아닌 인간과 함께 동감하며 인간에게 참되고 견고함을 보여주는 하느님 상을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하느님 본성은 바로 용서하시는 하느님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용서하다’라는 단어는 총 47번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동사의 주어로는 오로지 하느님만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용서 행위의 주체는 하느님 홀로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잘못과 죄악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렇듯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는 하느님 은총에 관한 구절을 읽다보면, 무언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죄악을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는 구절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너그러움, 분노에 더디심, 자애와 진실, 용서로 가득한 구절에 벌한다는 구절에 이어서 마무리되기에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은총은 천대까지 이릅니다. 1000:3-4의 비율입니다. 퍼센트로 따지면, 0.3-4%입니다. 거의 미미한 수이지요. 그만큼 하느님의 자비가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 계시된 계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심판 행위도 언급됩니다. 하지만, 그 심판보다, 그 징벌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은총의 정식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우리들은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러한 우리 부족함이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다는 모순적이면서 비논리적인 신앙의 언어를 우리의 마음에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2019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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