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26) 사울의 복음 선포 활동 시작(사도 9,19ㄴ-25)
박해자 사울, 선교의 길 나서다 -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사울은 아라비아로 건너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와 복음 선포 활동을 계속한다. 사진은 당시 아라비아 지역을 다스리던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 페트라 고대 유적지. 하나니아스에게 안수를 받고 다시 볼 수 있게 된 사울은 일어나 세례를 받은 후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립니다.(9,17-19) 며칠 후부터 그는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복음을 선포하다(9,19ㄴ-22)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의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9,19ㄴ-20) 다마스쿠스의 제자들은 사울이 자기들을 체포하러 왔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을 터인데, 그렇다면 그가 하나니아스와 함께 나타나니 처음에는 놀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니아스에게서 또 사울 자신에게서도 그간의 사정을 들은 후에는 사울을 받아들여 함께 지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곧바로 다마스쿠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울이 선포한 복음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인데, 사실 그가 다마스쿠스로 오게 된 것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믿는 이들을 박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를 하느님 아들로 여기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겼기에 살기를 내뿜으며 주님의 제자들을 박해했고 또 다마스쿠스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랬던 사울이 며칠 사이에 180도로 완전히 바뀌어서 자신이 그렇게 박해했던 그 예수를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자들을 짓밟은 자가 아닌가? 또 바로 그런 자들을 결박하여 수석 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합니다.(9,21)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차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명하여 다마스쿠스에 사는 유다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9,22) 사울이 피신하다(9,23-25) “그렇게 꽤 긴 시간이 지나자” 유다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기로 공모합니다.(9,23) 여기서 그렇게 꽤 긴 시간이란 어느 정도의 기간을 가리킬까요? 사도행전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울은 나중에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 기간에 대해 직접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갈라 1,13ㄴ-18)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이 서간 내용을 자세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서간에서 사울은 교회를 박해하려던 자기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 곧 예수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계시해 주셨다고 합니다. 바로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사건이지요. 그런데 사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아무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다고 하지요.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라비아란 요르단강 동쪽 사해까지 길게 펼쳐져 있는 나바테아 왕국을 가리킨다고 학자들을 봅니다. 나바테아 왕국은 기원전 2세기 중반부터 기원후 1세기 중반까지 지금의 요르단 땅에 나바테아인들이 세운 왕국입니다. 수도 페트라는 오늘날 고대 유적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사울이 간 곳이 나바테아 왕국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오가는 데 며칠이 걸리고 또 아라비아까지 갔다가 금방 오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울이 아라비아로 간 것은 회심하고 기력을 차린 후 며칠이 지나서가 아니라 한동안은 다마스쿠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뭔가 뜻한 바가 있어 아라비아로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와서 꽤 긴 기간 복음을 선포했고 그 사이에 제자들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회심 후 다마스쿠스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아라비아로 건너갔고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와서 3년을 더 지내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 기간은 사도행전에서 전하는 “꽤 긴 시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사울이 더욱 열심히 복음을 선포했다면, 유다인들은 반감을 넘어서 사울을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고 호시탐탐 때를 기다릴 만큼 사울에 대한 악의가 컸을 것입니다. 다시 사도행전으로 돌아갑니다. 사울을 없애기로 공모한 유다인들은 밤낮으로 성문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9,24) “그래서 그의 제자들이 밤에 그를 데려다가 바구니에 실어 성벽으로 난 구멍으로 내려보냈다”(9,25)고 사도행전 저자는 전합니다. 제자들이 사울을 몰래 피신시킨 것입니다. 사울에게 제자들이 생겼다는 사실 또한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꽤 긴 기간을 지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몰래 성벽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도 나옵니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아레타스 임금의 총독이 나를 잡으려고 그 성을 지키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 난 창문으로 내려 주어서 그의 손아귀를 벗어난 일도 있습니다.”(2코린 11,32-33) 이 서간의 내용은 사울 곧 바오로가 사도로서 활동하면서 겪은 고난의 하나로 코린토 신자들에게 직접 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보다 오히려 신빙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아레타스 임금은 기원전 9년부터 기원후 49/50년까지 나바테아 왕국을 다스린 임금입니다. 따라서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피신했을 때는 임금에서 물러났거나 아니면 죽고 난 후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마스쿠스의 총독은 아레타스 임금 사후에도 총독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총독은 다마스쿠스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사울을 잡으려고 했지만 사람들(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의 도움으로 사울은 무사히 다마스쿠스를 빠져나옵니다. 생각해봅시다 사울은 왜 아라비아에 갔을까요? 아라비아 어디를 갔는지, 왜 갔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마스쿠스에서 사울은 처음에는 회심했을 때의 그 열정과 용기로 호기 있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과 자신의 삶에 대해 정리하고 숙고할 필요를 느꼈겠지요. 그래서 다마스쿠스 동쪽 그러나 유다인들의 영향을 덜 받는 곳으로 가서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피정을 하고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피정이 필요합니다. 여러 이유로 삶에서 큰 전환기를 맞이했을 때 현실을 숙고하고 미래 방향을 가늠하고 계획하기 위해,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때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는 무엇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일이 요청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7월 28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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