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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마태오 8장 19, 20절 말씀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10 조회수262 추천수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그분의 제자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마태 8, 18-22)

먼저 성경을 묵상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텍스트 중에서 다가오는 한 단어를 묵상할 수도 있고,
한 구절을 묵상할 수도 있고,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묵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묵상 나눔을 하려고 합니다.

8장의 오늘의 말씀이 있기까지의 내용의 흐름을 먼저 묵상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먼저 소개합니다. 그 이유는 구약 성경에 오시기로 약속된
다윗의 후손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5장에서 7장의 산상 설교 내용을 보면 그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메세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마태 7, 28-29)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을 통해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의 법을 어떤 제도나 틀에 가둔 법을
배워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요, 가믐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측은히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수 많은
병자들을 무상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묵상하고자 하는 말씀이 있기 바로 전에 어떤 일이 있어느냐하면.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장면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앞에 나병 환자의 치유, 백인 대장의 종의 치유, 베드로의 장모의 치유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병자의 치유 사건 다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텍스트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하여 감동 받은 어떤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저는 여기의 여우들을 종교의 지도자들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들의 처신이 꼭 여우들 같지 않습니까?
자신들만의 굴을 파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굴이라는 의미가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닌듯 합니다.
굴에는 빛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빛이 없습니다.

또 하늘의 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고단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잠을 잘 수 있는 보금자리는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시며,
율법학자에게 네가 따르려고 하는 나의 조건이 이렇다. 그러니 네가 진정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바라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보라는 말씀으로 묵상해 봅니다.
내가 이런 처지에 있는데도 나를 따를 용기가 있느냐?

보통 예수님을 따르면 보장받은 미래요, 탄탄대로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결국 이 말씀 안에는 당신의 십자가 사건을 암시하고 있는 듯 묵상합니다.

그러자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아들은 똑똑한 한 제자가 예수님을 떠날 준비를
합니다. 말씀을 깊이 보면 아버지가 아직 죽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떠나긴 해야 하는데 적당한 구실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다 못한 효(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장례까지 마치고)를 다하고 당신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아주 나무랄데 없는 구실입니다.
늙으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효도로 모시고 장례까지 다 치루고
오겠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칭찬 받을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단호하십니다.

그 사람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여우들도 굴이 있고...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하신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아 들은 사람이므로 당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라는 말씀은 아직 당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아직 당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이들의 몫이다."라는
의미는 아닐까요? 주님은 생명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의 마음은 온갖 풍랑으로 흔들립니다.
그래서 다음 장면은 그 제자의 마음의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장면은 아닐런지요?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 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태 8,23-27)

성경은 항상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체적인 풍랑을 말씀하시기도 하고 우리 마음 안의 풍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실체적인 바람(풍랑)을 사람이 제어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의 마음의 풍랑도 우리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합니다.
그 힘과 능력은 오직 주님의 은총임을 고백하며 묵상을 마칩니다.

좋은 묵상의 시간을 갖도록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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