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 검색해서 인용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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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삼용 | 작성일2012-10-13 | 조회수4,194 | 추천수1 | 신고 |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24. 주님과 공동체 위한 자유일 때 유익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탈출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베푸신 많은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하느님을 시험하고 우상숭배에 빠짐으로써 여호수아와 칼렙만을 제외하고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이집트 탈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을 탐내고(10, 6), 우상을 숭배하고(10, 7), 불륜을 저지르고(10, 8), 주님을 시험하고(10, 9) 하느님께 투덜거렸던 것이다(10, 10).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 교우들의 삶이 이와 같다고 경고했다. 바오로는 교우들이 신전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를 주님의 성찬과 비교하면서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0, 16. 17)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동참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는다는 뜻이다. 성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친교요,그리스도인들 서로간의 친교라는 것이다.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그리스도인들끼리 하나 되는 잔치가 주님의 성찬이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교우들에게 우상숭배를 멀리하라고 하였다(10, 14). 신전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은 마귀들에게 바친 것이기 때문에 그 음식을 신전에서 먹는 것은 결국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이다(10, 19~20). 주님의 성찬에서 주님의 몸과 피에 동참한 교우들이 이교 신전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마귀들과 상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우들에게는 오직 주님의 식탁만이 있을 뿐이다. 바오로는 마귀들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는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으로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10, 22). 3) 교우들이 외교인들 가정에 초대받았을 때 신전에서 제사 지낸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 (10, 22~33) 코린토의 대범한 교우들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10, 23)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내세워 시장에서 내다 파는 제사 고기를 마음대로 먹었다. 바오로는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주님의 것이다”(10, 26)라는 구약 시편 24, 1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범한 교우들의 확신에 동의했다. 그리고 교우들이 외교인들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식탁에 오른 고기가 제사 지낸 고기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말고 먹으라고 했다(10, 27). “그러나 누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라고 말하거든, 그것을 알린 사람과 그 양심을 생각하여 먹지 마십시오”(10, 28)라고 하였다. 식탁에 놓인 고기가 제사 지낸 고기라는 사실을 외교인에게서 들은 경우에 교우는 그 외교인의 양심을 생각해서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10, 29). 바오로는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유익하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라고 하였다(10, 23. 24).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확신보다는 이웃사랑을 앞세워야 하며, 자신의 양심보다는 외교인의 양심을 존중함으로써 복음전파에 도움이 되도록 처신하라는 말씀이다(10, 32~33). 바오로는 사랑이 없는 지식을 경고했다. 사랑이 결여된 지식과 확신은 비록 그것이 양심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양심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면 공동체의 유익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바오로는 8장 12절에서 두 번씩이나 “죄를 짓지 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형제들에게 죄를 짓는 것은 바로 그들의 연약한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고 이는 결국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행위라고 하였다. 바오로는 1코린 8. 10장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문제를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1, 1)라는 말로써 마무리했다. 바오로가 교우들더러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오로 자신이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08년 7월 27일] ************************************************************************************** [정영식 신부의 신약 성경 읽기] 22.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4)
얕은 신앙 지식에 우쭐거리지 말고 이번에는 우상(偶像)이 문제다. 오늘날 미사 때 봉헌은 ''돈''으로 한다. 하지만 초기 교회 당시에는 양, 염소, 비둘기 등으로 봉헌을 했다. 코린토 교회를 들여다보자. 한 가장이 돼지를 잡았다. 당시 풍습대로 이 고기를 시장에 바로 내다 팔지 않고 신전 혹은 우상 앞에 바쳤다. 오늘 날 무당이 굿을 할 때, 돼지 머리를 앞에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제사를 마친 후 그 가장은 신전 혹은 우상에 바친 그 고기를 다시 집에 가져와 일부는 먹고, 일부는 시장에 내다 팔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신자들이 우상에 바쳐졌던 그 고기를 시장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자가 과연 우상에게 바쳐졌던 이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이 고기를 사서 성당에 와서 먹어도 될까. 먹으면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이 같은 일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등산길에 들른 한 불교 사찰에서 나눠주는 점심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상에 올려진 밥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굿하는 곳에 가서 남은 음식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은 개인적으로 이런 고기나 음식을 먹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본다. 실제로 많은 신심 깊은 신자들은 별다른 의미 없이 이런 음식을 먹는다. 자 그럼 이제 이 문제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바오로 사도도 일단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 자체가 우리의 구원 전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본다. "음식이 우리를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다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먹지 않는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먹는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1코린 8, 8) 그런데 그 다음 이야기가 묘하다."다만 여러분의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지식이 있다는 그대가 우상의 신전에 앉아 먹는 것을 누가 본다면, 그의 약한 양심도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을 수 있게끔 용기를 얻지 않겠습니까?"(1코린 8, 9~10) 우상 앞에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 그 행동이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신심이 깊고, 교리를 많이 알기 때문에 이런 음식을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신자들에게 경고한다. 바오로 사도가 볼 때 이런 행동은 세례 성사 받은지 얼마 되지 않는 믿음 약한 사람들을 넘어트릴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신심 깊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때문에, 신앙의 연륜이 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믿음 약한 사람들이 나쁜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1코린 8, 11~12) 굉장히 무서운 말이다. 믿음이 약한 사람, 신앙의 연륜이 짧은 사람들을 넘어뜨리게 하고, 그런 사람의 양심에 자꾸 상처를 주면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양심에 짓는 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직접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개념이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이 약한 사람을 위해서도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믿음이 강한 사람만 아니라 믿음이 약한 이들 안에서도 늘 함께 하신다. 우리는 얕은 신앙과 지식에 우쭐해 한 일은 없는가. 진정으로 믿음이 약한 이들을 배려하고 있는가. 믿음이 약한 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신앙의 연륜이 짧은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오로 사도의 이 같은 아래를 향한 가르침은 주님의 만찬(11장)과 사랑에 대한 계명(13장) 등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두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지만 많은 신학자와 영성가들이 다룬 부분인 만큼 이 지면에서는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려 한다. 실제로 가장 중요한 바오로 사도의 사상과 영성은 나중에 로마서 부분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 코린토1서 제8장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1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지식이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압니다. 그러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3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5 하늘에도 땅에도 이른바 신들이 있다 하지만 ─ 과연 신도 많고 주님도 많습니다만 ─ 6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7 그렇지만 누구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럽혀집니다. 8 음식이 우리를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다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먹지 않는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먹는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9 다만 여러분의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지식이 있다는 그대가 우상의 신전에 앉아 먹는 것을 누가 본다면, 그의 약한 양심도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을 수 있게끔 용기를 얻지 않겠습니까? 11 그래서 약한 그 사람은 그대의 지식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12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코린토1서 제10장 성찬례와 이교 제사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15 나는 여러분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18 저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희생 제물을 먹는 이들은 모두 제단에 동참하는 이들이 아닙니까? 19 그러니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20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1 여러분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식탁에도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도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22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강하다는 말입니까?
무슨 일이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23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24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 25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26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27 불신자 가운데 누가 여러분을 초대하여 여러분이 가고자 한다면,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여러분 앞에 차려 놓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28 그러나 누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하고 말하거든, 그것을 알린 사람과 그 양심을 생각하여 먹지 마십시오. 29 내가 말하는 양심은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사실 무엇 때문에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30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함께 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난받을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32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33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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