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31) 만남과 설교(사도 10,23ㄴ-48)
믿음 가진 모든 민족에게 열린 구원의 길 - 카이사리아로 올라가 코르넬리우스 집에서 설교하던 베드로는 성령께서 그곳의 모든 이에게 내리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사진은 지중해변 카이사리아에 있는 로마 시대 수도교 유적.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를 찾아가 그의 집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십니다. 이 일은 제자들의 복음 선포 활동에서 커다란 전기를 이룹니다. 유다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만남(10,23ㄴ-33)
베드로는 이튿날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사람들과 함께 야포를 떠납니다. 베드로 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야포에 있던 형제들 몇 사람도 함께 떠납니다.(10,23ㄴ) 베드로와 함께 떠난 형제들은 할례받은 신자들, 곧 유다인 신자들로서 모두 6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나중에 베드로의 중요한 증인들이 됩니다.(10,45; 11,12) 그다음 날 베드로는 카이사리아에 들어갑니다. 자기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놓고 기다리고 있던 코르넬리우스는 베드로가 들어서자 마주 나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지요.(10,24-26)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신하가 임금 앞에서 하는 행위처럼 지극한 예를 갖추는 행위입니다. 복음서에서는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병을 고쳐달라고 청할 때에 엎드려 절합니다.(마태 8,2; 루카 5,12) 코르넬리우스는 베드로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백인대장이 식민 지배를 받는 유다인, 그것도 별 볼 일 없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묵고 있던 베드로에게 이같이 극진한 예를 갖춘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코르넬리우스의 이런 행위는 그가 신심이 깊고 경건한 사람일 뿐 아니라 지극히 겸손한 사람임을 알게 해줍니다.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를 일으켜 세워 그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고 베드로는 묻습니다. 자신은 유다인으로서 이방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부정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느님이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환시를 보고 이곳까지 따라왔는데,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10,27-29) 베드로의 물음에 코르넬리우스는 4일 전 자신이 본 환시 내용을 그대로 설명합니다. 기도 시간에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눈부신 옷을 입은 사람 곧 천사가 나타나 “하느님께서 너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너의 자선을 기억하고 계시다. 그러니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불러오너라. 그는 바닷가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묵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에게 “참 잘 와 주셨다”고 말하지요.(10,30-33) 베드로의 설교(10,34-43) 그러자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세 부분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왜 코르넬리우스의 집에 오게 됐는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녔을 때에 ‘이방인들에게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는 예수님의 분부(마태 10,5-6)나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씀(마르 7,27)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복음 선포 활동 대상은 일차적으로 유다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시와 또 코르넬리우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10,34-35) 다음으로,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 복음에 관해 들어서 알고 있음을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또 필리포스가 카이사리아에서 복음을 선포했다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8,40)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하느님께서 나자렛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10,36-38ㄱ)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지상 생애 동안에 하신 일들과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이 그 증인임을 이야기합니다.(10,38ㄴ-43) 이 셋째 부분에서도 특별히 세 가지를 주목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이 성령을 받다(10,44-48) 베드로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십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그와 함께 야포에서 온 형제들은 유다인들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요. 베드로가 말합니다.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먼저 사도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던 이들에게 내립니다.(2,1-4) 그다음에는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회개해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내립니다. 이들은 물론 유다인들이었습니다. 복음이 사마리아에 전해지면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사도들의 기도와 안수를 통해 성령께서 내리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십니다. 사마리아인이 유다인들의 사촌격이라 한다면, 코르넬리우스는 완전한 이방인입니다. 복음이 유다인에게서 이방인들에게로 점점 퍼져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일반적인 순서(2,38)와 달리 코르넬리우스 집안사람들에게는 먼저 성령께서 내립니다. 세례는 그다음의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신심 깊고 하느님을 경외하며 많은 자선을 베풀고 늘 하느님께 기도하는 코르넬리우스는 이미 회개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속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꿔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 바로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이미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내리셨다는 것은 그 보증입니다. 우리는 회개의 삶을 사는 사람인지요?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9월 8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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