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함께 읽기] 천년 통치, 사탄의 패망, 마지막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 ‘새 예루살렘’ 구세사의 요약 ① 천년 통치(20,1-6)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용, 곧 악마이며 사탄인 그 옛날의 뱀을 결박하여 지하에 가두고 천년 동안 나오지 못하도록 봉인을 합니다. ‘지하’는 결정적 징벌인 불과 유황 못에 처넣을 때까지 사악한 영들을 가두어 두는 감옥입니다. 또한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 곧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만이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다스립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부활입니다.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는 행복하고 또 거룩한 사람입니다.” 이들에 대해 두 번째 죽음은 아무런 권한도 갖지 못합니다. 이제 그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사제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다스릴 것입니다. ‘천 년’은 상징수인데,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는 미래적 · 문자적 해석으로, 미래에 하느님의 나라와 구분되는 지상 왕국이 천 년 동안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는 종말의 첫 단계에서 이 세상 자체가 당신 계시의 영광이 드러난 곳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거적 · 영성적 해석으로, 천 년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때와 종말 사이에 펼쳐지는 잠정적인 기간을 가리키는 상징수로 보는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과 재림 사이의 마지막 시대(히브 1,2 참조), 곧 교회 시대를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세상 종말에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구원되리라는 기대가 성취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② 사탄의 패망과 마지막 심판(20,7-10) 천 년이 끝난 뒤 감옥에서 잠시 풀려난 사탄이 하느님을 반대하는 민족들을 규합하여 성도들의 진영과 하느님의 도성을 에워쌉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그들을 삼켜버리고, 악마는 첫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들어가 있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고통을 받습니다. 요한은 똑같은 종말 전투를 네 번이나 언급하는데(묵시 16,12-16; 17,14; 19,11-21; 20,7-10), 이제 사탄의 패배로 완전한 종말이 오고 이어서 마지막 심판이 뒤따릅니다. ③ 마지막 심판(20,11-15) 요한은 크고 흰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죽은 사람들이 모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각 사람의 모든 행동이 기록된 천상의 ‘책들’과 ‘생명의 책’이 펼쳐져 있는 것을 봅니다. 죽은 사람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자신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집니다.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두 번째 죽음인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습니다. 위대하고 순수한 어좌에 앉아 계신 전능하신 심판자 하느님 앞에 마지막 심판을 위해 두 가지 책이 펼쳐집니다. 하나는 행업의 책(심판의 책)이고, 다른 하나는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들이 모두 등록된 생명의 책(자비의 책)입니다.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이들은 구원을 받는 반면,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이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지만, 구원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도 회개하여 생명의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기를 원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환시 ① ‘새 하늘과 새 땅’(21,1-8) 요한은 바다가 없는 ‘새 하늘과 새땅’, 그리고 신부처럼 단장한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하느님의 거처가 사람들 가운데 있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외치는 큰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고, 더 이상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라는 외침을 듣습니다. 그리고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승리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그들의 하느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거부한 사람들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 두 번째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첫 창조 상태에로의 회복을 뛰어넘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창조’의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더 이상 혼돈의 상징이며 지하 세계 세력들의 거처인 바다가 없습니다. 신부와 도성이라는 표상은 하느님께서 세우시고 움직이시는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 이루어졌다.”라는 말씀으로 최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시면서, 그리스도를 충실히 증언하는 승리자들이 차지할 몫을 알려주십니다. ② ‘새 예루살렘’(21,9-27)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적힌 열 두 성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성 성벽의 열두 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습니다. 도성과 성벽과 초석들, 그리고 열두 성문은 온갖 보석으로 꾸며졌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에 도성 안에는 성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도성에는 하느님의 영광이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해와 달도 필요 없습니다.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성문도 닫지 않으며, 민족들이 걸어 다니고, 땅의 임금들과 사람들이 보화와 보배를 도성으로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역겨운 짓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누구도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며,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전통을 계승하여 열두 사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교회를 가리킵니다. 길이와 너비에 이어 높이까지 똑같은 정입방체는 기하학적 완전성을 상징하므로 천상 예루살렘은 완전한 조화와 균형을 갖춘 도성입니다. 또한 길이 · 너비 · 높이가 12,000스타디온(12×1000, 1스타디온은 185m가량이므로 12,000스타디온은 약 2,200km)이고, 성벽이 144페키스(12×12, 1페키스는 1암마와 같은 46cm정도이므로 144페키스는 약 66m)인 이 도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어린양의 열두 사도에 기초를 둔 하느님 백성과 교회의 완전성을 드러냅니다. 또한 이 성벽의 초석들이 열두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는 것은 대사제 복장 가운데 하나인 가슴받이에 박힌 열두 보석을 떠올리게 하면서, 교회의 사제적 지위와 역할을 확인하게 해 줍니다. 천상 예루살렘은 사제적 소명을 충실히 실현한 지상 교회의 성도들이 영원히 머무르게 될 장소로서 모든 민족들에게 열려있습니다. ③ 생명수의 강(22,1-5) ‘생명수의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도성 가운데를 흐르며, 강가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자랍니다. 거기에는 자신들의 이마에 하느님과 어린양의 이름이 적힌 종들이 그분의 얼굴을 뵙고 섬기며,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하느님을 직접 뵐 수 있다는 것은 참행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을 본다는 말을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분 안에서 기쁘게 사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9년 10월호, 조성풍 신부(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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