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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다윗 추락의 시작(2사무 11장)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16 조회수5,879 추천수0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다윗 추락의 시작(2사무 11장)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의 왕권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다윗이었습니다(2사무 7장). 그러기에 그의 앞날에는 꽃길만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다윗에게 서서히 어둠의 그림자가 다가옵니다. 다윗이 추락하게 됩니다. 다윗의 추락은 바로 자신의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탐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유도 없이, 그냥 자신의 욕정에 의해서 밧 세바를 탐하였을까요? 조금 자세하게 그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2사무 11,1)

 

이 구절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었음에도 다윗 자신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하들만 내보내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윗이 슬슬 꾀를 피우기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계속 살펴봅니다.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11,2)

 

다윗은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우선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로 시작되는 이 구절은 자신의 부하는 전쟁터에 보내놓고, 한가하게 빈둥거리다가, 오후에 잠이 들어 저녁에서야 느지막하게 일어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하느님을 따르고, 하느님의 뜻을 섬기면서, 용맹한 전사였던 다윗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한량하게 빈둥거리면서 낮잠을 자고 심심해서 몸을 비비꼬는 다윗만이 우리 앞에 서 있을 뿐입니다.

 

그는 무료함을 달래줄 신나고 흥미로운 일을 찾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었고, 그 여인에 대하여 수소문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자신을 위해서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장수 우리야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윗의 무료함은 악으로 변화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그는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는 결국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와 함께 잠자리를 갖게 됩니다. 이렇게 다윗은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악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되어 다가옵니다. 다윗은 밧 세바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그것을 감추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우선, 전쟁터에 있던 우리야를 불러옵니다. 그러고 나서 그를 불러서 술을 마시게 합니다. 자신의 악행을 감추고 덮으려는 본격적인 시도입니다.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 세 번, 거듭 시도합니다. 하지만, 죄악에 빠진 다윗과는 달리 우리야는 “계약 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초막에 머무르고, 제 상관 요압 장군님과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신하들이 땅바닥에서 야영하고 있는데, 제가 어찌 제 집에 내려가 먹고 마시며 제 아내와 함께 잘 수 있겠습니까?”(11,11)라고 이야기하면서 다윗의 꼼수에 저항합니다. 자신의 악행을 덮으려던 다윗의 모든 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마지막 시도는 우리야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11,15-17).

 

다윗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을 기획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지 않았기에 점점 나태해졌고, 그 나태함은 그를 무료하게 만들었으며, 그 무료함은 음욕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감추려고 했고, 그는 뉘우침 없는 폭주 속에서, 자신에게 충성하고,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충실한 장수 한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큰 잘못은 없습니다. 일상의 작은 균열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이 정도쯤이야...’ 하는 작은 걸음이 우리들을 죄악으로 빠뜨립니다. 다윗의 추락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닙니다. 그의 일탈과 범죄, 죄악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럼 다윗의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그의 죄악은 그의 왕권을 서서히 서서히 추락시키기 시작하였고, 다윗 가문에 피바람을 가져옵니다.

 

[2019년 10월 13일 연중 제28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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