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광야의 싸움(Ein Kampf in der Wüste) 이스라엘이 광야를 떠돌던 시기에 아말렉족과 벌인 싸움 이야기가 탈출기에 나옵니다(탈출 17,8-16 참조). 베두인족에서 유래한 이 아말렉족은 사울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에게는 가장 괴로운 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말렉족은 시나이 반도에서 중요한 교역로들을 장악하고 있었지요. 탈출기 17장은 아말렉족과의 싸움을 상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은 모세의 역할에 있기 때문입니다. 선발된 장정들이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적과 싸우는 동안, 모세는 장정들이 볼 수 있도록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서 있습니다(탈출 17,9 참조). 거기서 모세는 하느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 싸움에 나선 이스라엘 장정들을 향해 손을 뻗칩니다. 모세가 손을 높이 쳐들고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그가 손을 내리는 그 즉시 아말렉이 우세합니다.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그와 함께 올라간 아론과 후르가 모세가 앉을 수 있도록 돌을 가져다 놓습니다. 그런 다음 모세를 앉히고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받쳐주어 해가 질 때까지 그 손이 처지지 않게 합니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둡니다. 하느님 백성이 살아남는 법 여기서 하느님 백성이 다른 민족들처럼 전쟁을 벌여도 되는지, 승리를 가져온 모세의 두 손에 주술적인 힘이 있었는지 하는 물음들은 우선 잊어버리면 좋을 듯합니다. 대신에 단순히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하느님 백성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여호수아와 그를 따라 나선 장정들은 적과 싸워야 하지만, 승리는 그들의 용감함만으로는 달성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 수에 달려 있지도 않습니다. 높이 들린 모세의 손만이 승리를 가져다줍니다. 이 싸움 다음에 이어지는 모세의 장인 이트로와의 이야기를 보면, 모세는 “하느님 앞에서 백성을 대리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일을 하느님께 가져가”고,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걸어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가르쳐”(탈출 18,19-20)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모세는 구원하시고, 도우시고, 이스라엘이 가야 할 길을 열어주시는 하느님의 행동을 대리합니다. 달리 말해, 이스라엘의 주님께서 저녁이 될 때까지 함께 싸우지 않으셨다면, 모세의 손만으로는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행동은 인간의 행동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업적이고 동시에 이스라엘의 업적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바를 실현하시기 위해, 그분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분의 일을 짊어지고 그것을 자기 일로 삼는 이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물론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의 이 함께함을 분업적인 ‘협력’ 관계로 이해하면, 이는 전혀 옳지 않은 것이고, 이스라엘이 가진 종교비판적인 구별의 힘*에도 맞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마다 역사에 개입하심으로써 절반은 하느님께서 하시고, 인간은 자신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음으로써 그 나머지 절반을 하는 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생존은 온전히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모세의 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높이 들린 채로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느님 백성의 생존은 온전히 인간의 업적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병력과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담긴 신학은 훨씬 더 심오합니다. 모세는 그저 하느님의 끊임없는 행동을 대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대변합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변호자이고 청원자입니다. 이 점에서 이 이야기에는 참으로 실제적인 협력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중심 이스라엘에는 여호수아처럼 책임자로서 자신의 삶을 걸고 모험을 감행할 인물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싸울 때에 백성이 올려다볼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인물도 필요합니다. 모세에게서 나오는 힘은 전투력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힘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방향을 찾고 갈 길을 제시하는 중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고, 그 믿음이 이스라엘에게는 위로와 버팀목이 되는 인물이 필요합니다. 백성이 한마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보이는 표징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의 역할과 모세의 역할, 이 양편이 함께할 때만, 하느님 백성은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탈출기 18장의 이야기는, 서로 전혀 다른 역할과 직무의 협력이 긴장 가운데서도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거듭 알려줍니다. 곧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이며 자신의 장인인 이트로의 방문을 받습니다. 이트로는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압니다. 그는 모세가 여기서도 거듭 반복되듯 ‘아침부터 저녁까지’ 판결을 내리는 일에 쉴 겨를조차 없음을 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저녁이 되면 지치고 맥이 다 풀립니다. 그러자 이트로는 모세에게 업무들을 위임하고 천인대장, 백인대장, 오십인대장, 십인대장을 세우라고 충고합니다. 모세뿐만 아니라 모세가 거느린 백성까지 아주 지쳐버리는 일이 없도록(탈출 18,18 참조) 그들이 모세의 업무를 나누어 받아 모세를 돕게 하라고 이릅니다. 모세는 장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책임을 나누어줍니다. 한마음을 가능하게 하는 중심 이처럼 탈출기 18장은 하느님 백성 안에서의 협력에 대해 숙고하게 합니다. 이 협력은 구분이 분명합니다. 서로 돕고, 서로 도움을 받습니다. 모세가 모든 것을 혼자 다 알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 백성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방향을 잡을 수 있고 올려다볼 수 있는 중심이 필요합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 중심은 서로 한마음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그 자체는 다시 숨겨진 중심을 대리합니다. 이스라엘 안에서 하느님이 바로 그 숨겨진 중심이십니다. 이처럼 여기서 이 위대한 신학 노선에 주목하면, 하느님 백성이 칼을 들고 싸워도 되는지 하는 이 부담스러운 물음은 중요성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물음은 예수님에게서 결판이 납니다. 그분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하느님 백성 안에서]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산상 설교에서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9) 하고 말씀하실 때, 그 물음은 결판이 난 것입니다. 물론 구약성경 자체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이미 제시하고 있습니다. 땅을 정복하기 위한 싸움과 전쟁의 이야기들을 위대한 예언자들의 환시들 가운데 위치시킴으로써 바로 그렇게 합니다. 이 환시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정의로운 사회이고, 그리하여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배우기 위해 몰려오고, 마침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입니다(이사 2,1-5 참조). 아무튼 이 문제 때문에 여기서 탈출기의 이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됩니다. 탈출기 17장의 이야기는 진실로 하느님 백성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체험들을 이야기의 형태로 압축해 놓은 탈출기 17장 8-16절은 바로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곧 하느님 몸소 모든 것을 하시고, 동시에 하느님 백성 역시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는 그 믿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더불어 하느님 백성 안에서 믿는 이들의 협력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수없이 다양한 은사와 직무들을 선물로 받은 하느님 백성은 유일한 하나의 중심을 두고 한마음이 되어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 세계적인 성서학자이자 사제로, 독일 튀빙엔대학교에서 신약성서 주석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가톨릭통합공동체katholische Intergrierte Gemeinde에서 복음 정신에 따라 살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예수마음코칭』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외 다수가 있다. * 번역 : 김혁태 - 전주교구 소속 사제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Bible Insight : 이 칼럼은 저명한 성서신학자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가 매월 『생활성서』 독자들을 위해 보내오는 글로, 성경 안에서 길어낸 신앙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생활성서, 2019년 10월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 김혁태 신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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