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사무엘기의 신학 이스라엘 백성의 마지막 판관 사무엘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첫 임금 사울과 이스라엘의 왕조 시대를 개막한 다윗 임금의 이야기가 사무엘기 상권과 하권의 중심 이야기입니다. 사무엘기 이후에 등장하는 열왕기는 이제 다윗 왕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렇다면, 판관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이스라엘 역사의 변곡점을 들려주는 사무엘기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우선, 야훼 하느님의 왕권입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권의 설립 과정을 보여주는데 왜 야훼 하느님의 왕권이냐고. 사무엘기의 시작은 왕정 제도가 가진 위험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합니다(1사무 8,11-18). 사무엘기가 왕정에 대하여 비판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진정한 통치자는 야훼 하느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임금인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어 그 통치 아래 머문다는 것은 기존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의 왕정은 이방 민족의 왕정 제도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임금은 야훼 하느님 한 분이시고, 인간 임금은 그분의 자리를 대신하는 대리자요 봉사자인 것이지요. 이러한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그 임금은 좋은 임금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나쁜 임금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인 사울은 후자의 경우에, 다윗 왕조의 시작이었던 다윗은 전자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기준은 명확합니다. ‘진정한 임금님이신 하느님께 충실했는가?’입니다. 두 번째의 중심 주제는 바로 메시아에 대한 약속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에 관한 호칭을 떠올려 봅니다. 우선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입니다. 마태 1,1은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고 시작합니다. 눈먼 사람 둘이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9,27; 20,30-31) 하면서 외칩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합니다. 메시아는 바로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는 메시아 예수님을 반복적으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따라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바로 사무엘기의 주인공 다윗을 만나게 됩니다. 그럼 다윗과 예수님의 족보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하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집을 지어서 봉헌하겠다는 다윗에게 영원한 왕좌를 약속하십니다(2사무 7장):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주리라고 선언한다”(11절);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12절);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14절);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15-16절). 다윗 임금에게 내려진 신탁입니다. 심판이 아닌 밝은 미래가 담겨있는 희망찬 말씀입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기원전 587~538년). 멸망은 단순히 도성과 성전만 파괴된 것이 아니라, 다윗 왕조의 멸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지에 끌려가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윗 임금에게 내려진 희망 가득한 말씀은, 다윗 임금 한 사람만이 아닌 시련의 역사를 보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희망의 말씀이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역사 속에서 하느님께서 이제 새로운 다윗 임금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그 희망찬 기다림을 우리는 메시아 사상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메시아 사상의 출발점이 된 본문을 바로 사무엘기가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왕권과 이스라엘의 왕정과 그리고 미래에 도래할 새로운 왕정을 주제로 삼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품은 책이 바로 사무엘기입니다. [2019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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