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과 함께하는 치유여정] 하바쿡의 믿음 성실하게 양심껏 일해온 한 젊은이는 십 년째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인은 사전 통보조차 받지 않은 갑작스런 인사 발령 소식에 황망해합니다. 한 젊은 엄마는 아직 어린 아기를 두고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강하던 청년이 집단 폭행으로 뇌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모두가 저의 지인들에게 일어난 일들입니다. 과연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믿음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믿음이 어떤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이번 달 구약인물과 함께 하는 치유여정에는 우리와 똑같은 물음을 던졌던 하바쿡 예언자를 초대하려고 합니다. 현실의 고통 때문에 신앙에 깊은 회의를 품은 이들이 이 여정에 함께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바쿡 예언자에 대한 전기적인 정보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하바쿡 예언서를 통해 그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등장과 유다의 패망을 목격한 예언자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바쿡이라는 이름은 하바쿡 예언서 외에 다니엘 예언서 14장 33-39절에서도 언급됩니다. 추수꾼들에게 음식을 날라주던 하바쿡이 갑자기 천사에게 머리채가 잡혀서 바빌론의 사자굴로 날아가 그곳에 갇혀 있던 다니엘에게 음식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은 하바쿡보다 여러 세대 후의 인물이므로 이 사건은 하바쿡 예언자와 역사적인 연관성이 없습니다. 하바쿡 예언서의 흥미로운 점은 예언서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전언 양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바쿡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해주는 예언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살던 시대의 부정의와 폭력에 대해 하느님께 항의하는 예언자입니다. 부정의를 징벌하지 않고 고통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듯 보이는 하느님께 제발 무엇인가를 하시라고 그는 호소합니다. 이런 예언자의 불평과 그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 예언서의 주된 내용입니다. 첫 번째 불평(1,2-4)에서 하바쿡은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폭력과 불의, 재난, 부정의 앞에서 하느님께 얼마나 오랫동안 살려달라고 울부짖어야 하는지, 왜 하느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지 묻습니다. 악인들은 의인들을 둘러싸고 공정을 왜곡하기만 하는데 왜 하느님은 그저 불의를 지켜보고만 계시는지 따집니다. 여기에서 악인과 의인의 정체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기원전 597년에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인들에게 함락되기 직전, 정치경제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여호야킴 시절이 그 배경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언자는 자기 시대의 부정의와 폭력을 부정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뒤로 밀쳐두지도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 나아와 정직하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자신이 느끼는 혼란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토로합니다. 하느님의 무응답 때문에 이 땅에서 법이 세워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제발 무엇인가를 하라고 하소연합니다. 하바쿡의 첫 번째 불평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1장 5-11절에서 제시됩니다. 하느님은 부정한 이들의 사악한 행위를 알고 계시며, 이들을 징벌하기 위해 칼데아인들을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칼데아인들, 곧 바빌로니아인들은 제 것이 아닌 것을 차지하고, 법과 권위를 멋대로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하고, 거만하게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자신의 힘을 하느님으로 여기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빌로니아인들에 대한 비난인 동시에 유다에서 부당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을 꼬집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빌로니아인들의 침공이 유다의 악행에 대한 징벌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다른 예언서들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런데 칼데아인들의 침공은 결국 더 큰 폭력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유다의 사악한 이들을 징벌하시기 위하여 외세를 불러들이는 것은 결코 정의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예언자의 두 번째 불평입니다(1,12-17). 이 두 번째 불평에서 예언자는 유다의 죄를 징벌하기 위하여 외국의 세력을 불러들이는 것이 과연 정당하냐고 질문합니다. 외세의 침입으로 예루살렘은 몰락하고 백성들이 유배로 끌려가게 된 것은 지나친 징벌이라고 예언자는 말합니다.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되시는 분께서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이를 집어삼키는 것을 어찌 보고만 계시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예언자는 이 말씀을 드리고 나서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성벽 위의 망대에 서서 악을 징벌하실 하느님을 기다립니다(2,1). 예언자의 두 번째 불평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2장 2-17절에 제시됩니다. 이 단락은 두 개의 단락, 곧 2장 2-4절과 다섯 개의 불행 선언(2,5-17)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2장 2-4절에서 하느님은 환시를 기록해두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환시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므로 지체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의인은 그 ‘성실함’으로 인해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4). 하바쿡 예언서 2장 4절은 사도 바오로가 의화론을 변호하기 위하여 인용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로마 1,17;갈라 3,11 참조). 이 구절은 히브리서 10장 38-39절에서도 인용됩니다. 이어지는 다섯 가지 불행 선언(2,5-17)은 악인의 번성이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확신을 줍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반드시 실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혹 예언자가 이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예언자는 믿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행 선언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남의 것을 함부로 강탈하는 자와 탐욕스러운 자, 부정의한 자, 무법자, 우상숭배자들입니다. 예언자의 불평과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에 이어서 3장에서는 예언자의 기도가 소개됩니다. 음악과 관련된 표지가 1, 3, 9, 13, 19절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기도문은 탄원조 음률의 노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가 처음부터 예언자의 작품이었는지, 혹은 편집자에 의해 덧붙여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 노래를 하바쿡 예언서의 한 부분으로 보겠습니다. 3장에서도 1-2장과 병행되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구원 업적에 대해 익히 알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그 때처럼 현재의 상황에도 개입하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3,2). 이어지는 단락, 곧 3장 3-15절에는 예언자가 목격한 하느님의 신현이 묘사됩니다. 찬란한 빛 가운데 흑사병과 열병을 호위무사처럼 거느리시며 파란 산에서 올라오시는 크고 두려우신 하느님,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고자 행차하시는 영광과 승리의 하느님을 목격한 예언자는 두려움에 떨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고백합니다(3,16-19). 하바쿡 예언자는 여전히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느님 또한 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이 거룩하시고 성실하시며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임을 믿습니다. 그는 당혹스러운 현실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이런 분이심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고자 합니다. 비록 삶이 그가 믿는 바와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곧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올리브나무에서 수확할 것이 하나도 없고, 밭에서도 거둘 소출이 없으며, 외양간은 텅텅 비어버렸다 하더라도 예언자는 믿음을 포기하는 대신에 그가 믿고 있는 바를 더욱 굳건히 간직하고자 합니다. 이런 변화는 기도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느님의 신현을 목격한 그는 현실 속에서 정의의 구현이 요원해 보인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주님의 구원을 앞당겨 즐거워하며 기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믿음과 희망 안에서 그는 하느님께서 악인을 징벌하실 그 날을 조용히 기다리겠노라고 말합니다(3,16). 하바쿡의 이런 신뢰는 하느님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신뢰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신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구원 업적에 대한 신뢰와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바쿡은 부정의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시는 하느님을 섣불리 변호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자신이 사실 전부를 보지 못한다는 것, 하느님이 그리시는 구원의 큰 그림의 일부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그림 전부가 드러날 때까지 주님을 믿고 기다리고자 합니다. 하바쿡은 기도를 통하여 부정의한 현실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여전히 하느님께 믿음을 두겠다고 그는 선언합니다. 이런 믿음의 열매가 바로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요한 16,22)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바쿡 예언자는 이 불안의 시대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스승이기도 합니다. * 김영선 -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수도자로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마음을 치유하는 25가지 지혜』 『기도로 신학하기, 신학으로 기도하기』 등이 있다. [생활성서, 2019년 11월호, 김영선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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