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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왕국의 분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6 조회수7,537 추천수0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왕국의 분열

 

 

솔로몬 임금이 죽고 난 후에 르하브암이 그의 뒤를 잇게 되는데, 새로이 임금이 된 르하브암은 아버지 솔로몬이 백성에게 지운 멍에보다 더한 멍에를 지우겠다고 예고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온 이스라엘의 마음이 다윗 왕조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특히 북쪽의 열 지파들은 솔로몬 임금 시대부터 불만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만은 새로운 임금 르하브암 시대에 극에 달하게 되었고, 예로보암이라는 인물을 임금으로 세우면서 남북 분열의 길을 걷게 됩니다. 북쪽은 열 지파를 중심으로 북 이스라엘이라 칭하게 되었고, 남쪽은 남아 있는 두 개의 지파를 중심으로 남 유다 왕국이라고 불리게 되면서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은 막을 내리고 남북 분열의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에 북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예로보암은 자신의 통치를 견고하게 하고자 노력합니다. 예로보암은 남 유다 왕국과 비교하여 한계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바로 왕조의 정통성 문제와 예배 장소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르하브암 임금이 훌륭한 임금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는 다윗 왕조의 계승자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장소는 예루살렘만이 유일했습니다. 이것은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가야만 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제의(祭義)의 중심지인 동시에 남 유다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로보암은 백성들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다윗 왕조 임금인 르하브암에게로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설 것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1열왕 12,26-27). 그러기에 그는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베텔과 단에 두고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1열왕 12,28)라고 선언합니다. 이에 북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은 자연스레 베텔과 단으로 하느님을 섬기러 가게 됩니다.

 

금송아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요? 바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첫 계명을 어긴 사건입니다(탈출 32,1-6).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당시 금송아지를 만들고 송아지상 앞에서 외친 말과 예로보암이 북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던진 말이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입니다(참조: 탈출 32,4). 북이스라엘의 베텔과 단에 놓인 금송아지는 바로 이집트 탈출 사건 당시 이스라엘의 죄를 떠올리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왕기의 저자는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 일이 죄가 되었다.”(1열왕 12,30). 예로보암이 왕조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시도한 정책은 결국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거슬렀던 사건과 같은 무거운 죄라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예로보암에게서 시작된 북 이스라엘 왕국은 이렇게 시작부터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금송아지상만 문제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예로보암은 산당(山堂)들을 짓고,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하고, 마음대로 축제일을 제정하는 등 하느님의 계명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왕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뒤에 북 이스라엘 왕국도 남 유다의 백성들처럼 하느님을 섬깁니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하느님을 섬깁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느님만 섬기면 되지, 방법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지만, 탈출기와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알려준 주님의 계명과 규율, 가르침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을 예로보암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유로 마음대로 변화시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로보암이 보여준 일련의 종교적 행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독이 되어 돌아오고, 이 일은 후에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을 설명하는 이유로 제시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생각으로 하느님을 섬긴다면, 그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을 열왕기는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나요? 나만의 방식, 내가 좋을 대로만 섬기려고 하지 않는지 예로보암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2019년 11월 24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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