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세와 모세의 장인 이야기와 예수님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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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3-02-13 | 조회수815 | 추천수0 |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하느님께서 야곱이 이집트에서 정착한 후 삼백 오십년 경에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기억하셨다. 그리하여 모세를 보내셨고, 모세의 나이 마흔에 동족의 종살이를 기억하게 하셨다. 하여 모세는 동족을 때리는 이집트인을 죽이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쳤다.’ 함께 성경 공부를 하는 친구가 멜로 질문한 내용 중 가장 난해한 문제이다. 이 내용의 진위 여부는? 저는 이 내용의 진위 여부를 가르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숫자는 진위 여부를 떠나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숫자 이상의 할 말씀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아주 중요합니다. 우선 숫자 4는 충만함을 의미한다고 배웠습니다. 숫자 4는 동저남북 곧 온 땅을 의미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소명을 받은 나이를 40으로 말씀하시고 계시나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면 80살 때에 소명을 받은 것이 맞기도 합니다. "사십 년이 다 찼을 때, 시나이 산 광야에서 천사가 떨기나무 불길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습니다."(사도 7,30) 그런데 신명기의 말씀으로 계산해 보면 모세가 소명을 받은 나이는 80세가 되어야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냈기에 그렇습니다. 모세가 80에 소명을 받았어야 40년 광야 생활을 했다는 계산이 나오기에 그렇습니다. "모세는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눈이 어둡지 않았고 기력도 없지 않았다."(신명 34,7) 사람이 120년을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수명을 충만히 누렸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40년을 3번 보냈으니 그 얼마나 충만하겠습니까? 3은 신적인 완전수가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120년을 살도록 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창세 6,3 참조) 그러므로 모세가 소명을 받은 나이는 80세이고 40세이후는 미디안 땅에서 보냈고 그 이전 40년은 이집트 궁전에서 살았다는 결론입니다. 이집트 왕궁에서 왕자로 왕들의 생활을 충분히 공부했기에 이집트 왕과 맞설 수 있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미디안 땅에서는 미디안의 사제와 함께 생활하면서 앞으로 하느님을 섬길 어떤 자세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했다는 의미와 광야에서도 충분히 자신의 역활을 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탈출 3,1) 여기서 모세의 장인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저의 묵상을 나눌까 합니다. 모세의 장인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등장을 합니다. 이트로(탈출 3,1), 호밥(민수 10,3), 르우엘(탈출 2,18) 등 입니다. 모세의 장인은 미디안의 사제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서 힘들어 할 때에 모세에게 조언(탈출 18,13이하 참조)을 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장인의 충고에 따라 그가 말한대로 다 하였습니다.(탈출 18,24) 그리고 모세는 장인을 떠나보냈습니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모세보다 모세의 장인의 멋진 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한 공동체에 두 명의 리더는 있을 수 없습니다. 모세가 이끄는 공동체에 모세에게 충고를 한 인물이 있다는 것은 사실 모세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세는 원치 안핬기에 장인의 충고를 받아 들이고 그를 떠나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던 장인은 제고자장으로 돌아갔다(탈출 18,27 참조)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듣고 이해한 이트로의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귀하다는 묵상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세에게 충고를 한 사실을 안다면 어떤 면에서 모세보다 그의 장인을 더 큰 인물로 볼 수 있기에 그러지 않았나 라고 묵상해 봅니다. 그 다음으로 모세가 미디안의 사제인 이트로의 충고를 받아 들이기 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묵상해 본 내용을 나눔을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가지 경로로 자신들의 공동체에 이방인들을 허락하여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한가지 방법이 할례이고 이번 제가 나눔을 하고자 하는 방법도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본문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탈출기 18장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장인이 모세의 아내 치포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오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장인이 하는 고백과 그 고백을 받아 들이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들을 어떻게 자신들의 공동체에 받아 들이고 있는지에 관한 묵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계가 유다인이어야 그의 자녀가 이스라엘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부인의 경우 미디안 사제의 딸로 이방인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두 아들은 유다인이 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것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 한 경우는 치포라가 두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면서 해결하고 (탈출 4,24-26 참조) 다른 한 경우가 오늘 제가 나눔을 하고자 하는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찾아 온 이트로의 고백입니다. "이트로가 말하였다. '이집트인들의 손과 파라오의 손에서 자네들을 구해 주신 주님, 이 백성을 이집트인들의 손 아래에서 빼내어 구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 받으시리라! 이집트인들이 이 백성을 방자하게 다루었지만, 그 일에서도 이제 나는 주님께서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다는 것을 알았네.' 모세의 장인 이트로는 하느님께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쳤다. 그러자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들이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느님 앞에서 음식을 먹었다."(탈출 19, 10-12 참조) 이 텍스트를 잘 묵상해 보면 이트로는 미디안의 사제인데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주님'이라고 고백한다는 사실입니다. 이트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신 하느님의 권능을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딸과 두 손자를 데리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스스로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백 후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왜냐? 아직 이스라엘 공동체는 주님께 계약의 책(탈출 20,22 이하)을 받기 전이고 더더욱 번제물과 희생 제물에 관한 규정은 레위기에 가서야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집트에서 막 탈출한 직후에 미디안의 사제 이트로는 하느님께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트로가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고 난 후에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들이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느님 앞에서 음식을 먿었다고 합니다(탈출 18,12) 이스라엘인들은 절대 이방인들과 음식을 함께 먹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서 음식을 함께 먹었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한 사건인 것입니다. 할례를 통하지 않고도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저는 이렇게 묵상해 본 것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이집트 탈출(파스카 사건)이 곧 예수님을 통한 교회의 입문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과거 이집트 탈출 이전에는 할례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면 이제 이집트 탈출 이후에는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묵상해 본 내용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장인은 그러한 제물을 바쳐야 했지만 오늘의 우리들은 그러한 제물이 필요치 않게 된 것입니다. 왜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번제물이 되셨고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 가없는 사랑에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묵상이 신학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의 개인적인 묵상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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