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예루살렘 (3)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 – 하늘에서 내려다본 예루살렘 구 시가지.
오순절의 첫 성령강림으로 출발한 예루살렘 초기 신자 공동체. 이 공동체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사도행전은 이 공동체의 삶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요약해서 전합니다(2,42-47; 4,32-37; 5,12-16). 우선 눈여겨볼 구절은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라는 2장 42절입니다. 이 구절은 신자 공동체의 생활이 기본적으로 네 가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다른 구절과 대목들은 모두 이 구절을 부연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일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베드로 사도가 첫 오순절 설교에서 설파한 것을 설명하고 보충하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면서, 이 모든 것이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실현됐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활동은 단지 신자들을 가르치는 일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 병자들과 더러운 영에 시달리는 이들이 모두 낫습니다. 그 표징과 이적들은 또한 사람들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이 두려움은 단순한 무서움이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보여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敬畏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친교를 이루는 일입니다. 이 친교는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친교, 곧 믿음의 형제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과 사랑의 친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친교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모습이 공동생활과 공동 소유였습니다. 신자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습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거나 사도들 발 앞에 가져다 놓고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았습니다. 그래서 신자들 가운데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 예루살렘 성전 모형. 기둥이 많이 늘어서 있는 곳이 솔로몬 주랑이다.(좌)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성전산 서쪽면의 주랑.(우) 이 주랑은 근대 것이지만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주랑도 이와 비슷한 형태였을 것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눠 셋째, 빵을 떼어 나누는 일입니다. 빵을 떼어 나누는 것 곧 음식을 나누는 것 역시 친교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빵을 떼어 나눈다는 것은 단지 음식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때에 제정하신 성찬례를 거행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다”(2,46)라는 것은 이 초기 공동체에서는 성찬례가 신자들의 집에서 거행됐음을 나타냅니다. 넷째, 기도하는 일입니다. 신자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여”(2,6)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기도하러 모인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어디에 모였을까요? 솔로몬 주랑입니다(5,12). 솔로몬 주랑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방인의 뜰이라고 부르는 가장 바깥마당 동쪽에 있는 긴 주랑입니다. 왜 이곳에서 모였을까요?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요한 10,3).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주로 이 솔로몬 주랑에서 가르치셨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솔로몬 주랑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베드로는 솔로몬 주랑에서 설교했고 (3,11), 신자들도 한마음으로 이곳에 모여 기도했을 것입니다(5,12). 하지만 초기 공동체는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집에서도 모여 기도했습니다. 이 집 저 집에 모여 성찬례를 거행하고 음식을 나누며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2,46-47). 신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진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며 지내자 “백성은 그들을 존경하여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났다”(5,13-14)고 사도행전은 전합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삶을 우리 신앙 선조들도 살았습니다. 박해시대에 피난살이를 하면서 형성한 교우촌의 삶이 그랬습니다. 가진 것을 다 잃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어렵사리 목숨을 유지했지만, 교우촌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박해가 끝난 이후에도 공소를 중심으로 교우촌을 이루며 살던 신자들은 누구 집에 수저가 몇 벌 있는지 훤히 알 정도로 서로 친교를 이루며 살았다는 사실을 여러 기록과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1세기 예루살렘에 있던 주택의 모형(위). 1세기 예루살렘에 있던 집의 1층을 재현한 모형(아래).
탐욕을 경계해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사도행전은 신자들이 모두 예외 없이 이렇게 이상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는 일도 빼놓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행전은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이야기입니다. 하나니아스는 아내 사피라와 함께 재산을 팔아 사도들 앞에 갖다 바쳤는데, 일부를 떼어 놓고 바치면서 마치 다 바친 것처럼 속였습니다. 하나니아스는 베드로에게서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였다”라는 질타를 받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지고 맙니다. 그의 아내 사피라도 마찬가지로 숨을 거두지요(5,1-11) 다른 하나는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차별 문제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공동체는 예루살렘에 살던 유다인(히브리계 유다인) 신자들과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지역 곧 이집트나 키프로스, 소아시아 등지에서 태어나 살다가 예루살렘에 정착한 유다인(그리스계 유다인)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자가 늘어나면서 그리스계 유다인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 홀대를 당하는 일이 생겨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린 것입니다. 이 문제는 사도들이 신자들 가운데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식탁 봉사를 맡김으로써 해결됩니다(6,1-7). 사도행전이 초기 신자 공동체의 생활을 이상적으로 전하면서도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이야기나 배급 차별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것은 특히 물질주의의 파고에 휩싸여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탐욕을 경계하는 일입니다.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의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가끔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묵상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3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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