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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8 조회수1,506 추천수1 신고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뿌리 채 말라버리도록 저주한 것은,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마지막 기적’을 제자들에게 보여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음에서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저주를 한 것은 헤로데와 무화과나무의 저주가 대표적인 것 같다. 유다와 베드로에 대한 저주의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제자들의 교육을 위한 직접적인 표현이었지만, 저주할 뚜렷한 이유가 없이 저주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유일한 사례라고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기 예수님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다가, 우리의 온갖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드라마를 연출하셔야 했다. 그것이 하느님의 우리의 구원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죽음은 인간으로서는 가혹한 것이었고, 인간 예수님에게도 처절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구원 계획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죽음에 직면하시는 예수님[마르 13,31-33]’도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여우같은 헤로데’라고 사람을 그것도 왕을 짐승같이 취급하셨다.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 사건을 생각하여 헤로데 왕을 저주하셨다. 
 

무화과나무의 저주도 마찬 가지이다. 예리코에서 눈먼 두 사람을 치유하시고 베타니아를 지나 예루살렘에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다.
앞서 가는 군중과 뒤따라가는 군중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외쳤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겉으로는 군중도 예수님을 환영하였지만 일부는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로 생각하고 있었고, 제자들은 아직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속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성전 예루살렘은 ‘기도하는 집’이 아니고 ‘강도들의 소굴’로 이미 변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그리고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라고 이르시고는 그곳을 나와 베타니아로 오시어 그곳에서 밤을 지내셨다. 예수님은 너무 허전하셨고 지쳐있었다.
그토록 많은 기적과 치유를 보여 주셨지만 아직도 그들은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의 신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전 성화 시에도 일부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대들기도 하였고,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음날 새벽에 성안으로 되돌아가실 때에 시장하셨다.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거짓말, 빌라도의 재판으로 이어지는 군중의 야유와 십자가 죽음, 심지어는 그토록 공들여 키워온 제자들의 줄행랑을 생각할 때면 너무 허전하셨고 억울하셨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시면서 성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발길은 무겁기만 하셨을 것이다.
이제 가면 살아생전 마지막 예루살렘의 마지막 굴욕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활의 영광을 안고 제자들을 갈릴레아에서 만날 것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할 것만 같지만 이 마지막 입성을 앞두고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다. 그러나 잎사귀 밖에는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 맺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자 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다.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사건을 향해 가는 길에 무화과나무도 예수님께 무언가를 준비해 두지 않았다. 심신이 피로한 예수님께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준비를 해 두지 않았다. 온 천하를 다스리시는 예수님도 인간적인 역정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 맺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자 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다. 준비하지 않은 나무의 말로였다. 우리도 마지막 날 그 심판 날을 위해 준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언제 시장하신 예수님이 우리 곁을 지나치실 줄 모른다. 더더구나 베드로를 위시하여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원을 아직도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마지막의 기적을 보여 주시면서 자신의 신원을 알려주고 싶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것과 같이, 살아 있는 무화과나무를 말씀 한 마디에 죽일 수 있는 기적을 보여 주셨다. 
 

이 일을 본 제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놀라서, “어째서 무화과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기적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엄청난 기적도 이루어 질 것이라고 분명히 대답하셨다. 그리고 나와 같이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라고 일러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기도할 때에 용서해 주어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심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무화과나무의 저주’ 기적과 제자들에게 알려 준 이 ‘믿음에 대한 교훈’에서, 수난과 부활을 세 번이나 예고하시고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 마지막 때에도 예수님은 믿음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용서해 주라고 설교하셨다. 이 베타니아에서의 무화과나무 저주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고, 우리가 미워하고 있는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뿌리 채 말라버리게 한 이 주에 관련된 하느님의 큰 구원 계획을 정확히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제자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한 예수님의 ‘마지막 기적’을 보여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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