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사목교서 ‘성서의 해 II’ 특집] 욥기 삶이라는 여정을 걸으면서 고통과 고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고통과 고난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취했던가요? “내가 무슨 그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런 시련이? 이런 고통이? 나보다 더 죄 많이 지은 사람도 큰소리치면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그렇기에 고통과 고난은 우리의 지상 여정에서 함께 가는 동반자처럼 여겨집니다. 함께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그런 불편한 동반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러한 질문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보다 하느님을 먼저 만나고 체험했던 신앙의 선배들도 이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특히 전통신학이라는 ‘행위-보상’의 이론을 주님의 가르침으로 믿고 살았던 사람들이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의인이 상을 받는 것은 하느님의 보상이요, 악인이 벌을 받는 것은 하느님의 처벌이라는 논리적 도식에는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의인이 고통을 받는 경우가, 악인이 더 잘 사는 경우가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믿음으로, 신학으로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욥기라는 대서사시가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욥기는 욥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에게 소개해 줍니다. 욥은 우츠라는 지역의 사람이었고, 그는 흠이 없었고, 올곧았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의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이 단 세 명이 있습니다. 노아, 다니엘, 욥이 그들입니다(참조: 에제 14,12-23). 욥은 그만큼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그의 의로움과 상관없이 그에게 시련이, 고난이, 고통이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욥기와 전통신학의 충돌이 생깁니다. 분명 전통신학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의롭게 살아가면 상과 복을 받는다고 가르쳐주는데, 욥이라는 구약에서 셋밖에 없는 의인에게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욥기는 이러한 충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욥기는 42장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지만, 그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욥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서문(1,1-2,13)은 욥이 누구인지, 욥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고통을 받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욥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본문(3,1-42,6)은 ‘욥과 친구들의 대화(3,1-37,24)’와 ‘하느님과 욥의 대화(38,1-42,6)’로 구성됩니다. 이 긴 대화 속에서 욥의 친구들은 전통신학의 대변자로 등장하면서 욥이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되었으니 회개하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욥은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항변하면서 하느님을 향해 탄원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욥과 친구들의 대화가 오고간 뒤에, 하느님과 욥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조금은 허망하게 보일 수 있지만, 하느님과 욥의 대화에서 욥은 고분고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보여준 투쟁적 모습은 사라지고, 창조주 하느님 앞에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결문(42,7-17)은 의로운 욥에 대한 하느님의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대서사시가 마무리됩니다.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무언가 구체적인 답을 전해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들고 시작한 이야기는 욥기를 읽는 우리에게 시원한 해답을 제공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욥기의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불편함을 제공하기 위해서 그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요? 욥기는 가장 의로운 사람일지라도 고통을 받게 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고통의 근원, 고통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인간은 고통 앞에서 무력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하느님을 향해서 탄식을 올리고 기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고통의 긴 터널에서 그러한 삶의 자세를 취할 때, 하느님을 마주할 수 있게 되고,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42,5)라는 고백으로 이끌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의 선물임을 알려줍니다. 고통과 고난, 시련 때문에 하느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울부짖으면서 찾아나서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인이 나가야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2020년 3월 22일 사순 제4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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