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사도행전 읽기 (5) 스테파노 순교와 함께 교회는 큰 박해를 받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루살렘을 떠나 인근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집니다. 사도행전 저자 루카는 이를 계기로 제자들이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에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고 전하는데(8,4), 이는 사도 1,8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나아가 땅끝까지 예수의 증인이 되라고 명하신 바 있습니다. 스테파노 순교 때까지 예루살렘에 복음이 전해졌다고 한다면, 이제 두 번째 단계로 온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에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 한 가지는 이 모든 일이 제자들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적대자들의 박해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박해를 일으키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박해는 그리스도의 적들이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적들의 박해를 통해서도 당신 일을 행하는 분이십니다. 박해자 바오로 루카는 바오로, 곧 사울도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 감옥에 넘긴 박해자라고 증언합니다. 이는 바오로 갈라 1,13에서 바오로 자신도 증언하는 바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바오로는 유다교를 열심히 신봉하며 조상들의 전통을 충실히 지키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유다교의 근간을 흔드는 듯 보이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의 박해에 대한 사도행전의 증언이 조금은 과장되어 보입니다. 곧, 바오로가 사도행전이 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포악한 그리스도교 박해자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 의문이 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합니다. 첫째, 갈라 1,22에서 바오로는 회심 뒤 삼년이 지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때 유다 교회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었다고 전합니다. 어떻게 그토록 강렬하게 박해하던 박해자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둘째,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는 서로 으르렁거리며 싫어하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리사이파였던 바오로가 사두가이파의 수장인 대사제에게 가서 박해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을까요? 셋째, 대사제는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 종교적인 문제와 관련된 영역에서만 그 권한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사제가 시리아 총독이 다스리는 지역까지 사람을 잡아 오라고 박해자들을 보낼 수 있었을까요? 사실, 성경 이야기들도 우리네 이야기들과 똑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기에, 이야기 전개를 위해, 또 설득을 위해 충분히 특정 소재들을 과장할 수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방금 언급한 박해 문제에 관해서도 루카가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 조금 과장했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우리” 루카 사도는 뛰어난 이야기꾼이기에 자신이 전해 들은 바들을 흥미진진하게 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바오로가 박해를 어떤 방식과 강도로 수행했느냐가 아니라, 바오로가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 섰음은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바오로도 자신의 편지에서 자신이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다고 여러 번에 걸쳐 고백합니다.(1코린 15,8-9; 갈라 1,13-14; 필리 3,5-6) 그리고 이런 자신을 두고 바오로는 항상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 또는 ‘사도로 불릴 자격조차 없는 자’로 자처하곤 했습니다.(1코린 15,9) 다만, 사도행전이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유명한 박해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 복음선포(8,4-2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이는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유다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이 선포된 첫 번째 사건입니다. 물론,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공생활하실 때 이미 이방인들도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전합니다. 또한 요한 복음서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사마리아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이야기합니다.(요한 4,1-42) 하지만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공생활하실 때에는 사마리아 사람들마저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루카 9,51-56) 복음서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증언들을 전해줍니다. 그러면 어떤 증언이 맞는 것일까요? 그 답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되돌아가 보지 않는다면 결코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유다인들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가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복음서들은 이에 관한 다양한 증언들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복음을 선포한 인물은 필리포스였습니다.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도들이 식탁 봉사를 위해 뽑은 일곱 부제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6,5) 그런 필리포스가 사마리아 고을로 내려가 더러운 영을 쫓고 중풍병자와 불구자를 낮게 하는 등 성공적으로 복음선포를 해 나갑니다. 이렇게 보니 당시 부제들의 역할이 단순한 식탁 봉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어찌 되었건 사마리아 고을에 살던 시몬이라는 마술사도 필리포스에게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예루살렘에 있던 베드로와 요한이 올라와서 안수로 성령을 주는 것을 보고는 큰돈을 바치며 자신에게도 그런 능력을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대가 하느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시모니아’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하느님이 주는 카리스마를 돈으로 사고파는 모든 시도를 의미합니다. 베드로의 경고를 들은 시몬은 즉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도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사를 돈으로 사고팔 수 없음을, 그분이 주는 은사는 항상 무상임을 깨닫게 됩니다. 필립보와 에디오피아 내시, 가자로 가는 길에서(8,26-40) 베드로와 요한,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여러 마을에 복음을 전한 뒤 예루살렘으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나타나 이스라엘과 이집트 국경 지역에 있던 가자로 내려가라 명합니다. 천사의 명을 받고 일어나 길을 나선 필리포스는 길 위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던 에티오피아 여왕 칸타케의 내시를 만납니다. 칸타케라는 말은 에티오피아어로 여왕이라는 뜻입니다. 그 여왕은 1열왕 10,1-10에 등장하는 스바 여왕의 후손으로 여겨지는데, 에티오피아 전승은 스바 여왕이 솔로몬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다고 전합니다. 이후 에티오피아에도 유다인들이 생겨났는데, 오늘날도 이스라엘에 가면 에티오피아 출신 유다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왕의 내시는 이사 53,7-8, 곧 주님의 수난 받는 종 이야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필리포스는 내시에게 다가가 그 구절이 말하는 주님의 수난 받는 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혀줍니다. 그러자 필리포스의 말에 감명받은 내시는 필리포스에게 즉시 세례를 받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은 에티오피아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 필리포스는 필리스티아인들의 도시였던 아스돗과 로마 총독이 머물던 바닷가의 카이사리아에까지 지중해 바닷가 지역에도 복음을 전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세계로 한 발 한 발 퍼져갑니다. [2020년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 가톨릭마산 4-5면, 염철호 요한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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