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9) 음모를 꾸미는 유다인들과 호송되는 바오로(사도 23,12-35)
로마 시민 바오로, 카이사리아 총독에게 보내지다 - 바오로를 죽이려는 유다인들의 음모가 천인대장에게 알려지면서 천인대장은 군사들을 시켜 바오로를 호송해 카이사리아에 있는 유다 총독에게 보낸다. 사진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카이사리아 유적지와 유적지에서 발굴된 빌라도 총독 비문.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그 계획이 바오로에게 전해집니다. 바오로는 로마 군사들의 보호 속에 카이사리아로 총독에게 호송됩니다. 유다인들이 음모를 꾸미다(23,12-22) 바오로가 로마 군대 진지에서 밤을 지낸 다음 날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바오로를 죽이겠다는 결의가 너무나 확고해서 그들은 “바오로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였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록합니다.(23,12) 여기서 ‘하느님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으면 하느님의 어떠한 저주나 벌도 달게 받겠다는, 아주 강한 의미를 지닌다고 성경학자들은 해석합니다. 그만큼 바오로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들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을 찾아가 자기들의 계략을 설명합니다. 다른 최고 의회 의원들과 함께 천인대장을 찾아가 조사할 것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바오로를 최고 의회로 데려오면 매복해 있다가 도중에 바오로를 없애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음모에 가담한 자는 마흔 명이 넘었습니다.(23,13-15) 그런데 바오로의 조카가 이 계획을 듣고는 진지 안에 있는 바오로에게 알려 줍니다. 바오로는 조카를 천인대장에게 보내고, 천인대장은 그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후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지시한 후 돌려보냅니다.(23,16-22) 카이사리아로 호송되는 바오로(23,23-35) 그러고 나서 천인대장은 즉각 조처를 취합니다. 우선 백인대장 두 사람을 불러 지시를 내립니다. ①“오늘 밤 아홉 시에 카이사리아로 출발할 수 있도록 군사 이백 명에다가 기병 칠십 명과 경무장병 이백 명을” 준비하고 ②바오로를 펠렉스 총독에게 무사히 호송할 수 있도록 바오로를 태울 짐승들을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③또 펠릭스 총독에게 전할 편지를 써 건네줍니다.(23,23-25) 카이사리아는 헤로데 대왕이 로마 황제(카이사르)를 위해 재건한 지중해변의 도시로, 유다를 다스리는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천인대장은 로마 시민인 바오로를 총독에게 보내려고 이런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오늘 밤 아홉 시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은 유다인들 몰래 바오로를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딸려 보내는 군사가 470명이나 됩니다, 바오로를 죽이려는 음모에 가담한 유다인이 40명이 넘었다는 것과 비교하면 무려 10배가 넘는 숫자입니다. 게다가 바오로를 태울 짐승까지도 준비토록 합니다. 그만큼 바오로의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으로 바오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보다 높은 신분인 바오로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자기한테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내린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함부로 결박해서는 안 되는 로마 시민 바오로를 결박해 놓은 일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22,29)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름이 클라우디우스 리시아스인 이 천인대장은 로마 시민인 바오로에게 죄가 없고 무죄한 로마 시민을 보호하려는 자신의 처신이 정당하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천인대장이 펠릭스 총독에게 써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펠릭스는 원래 노예였다가 자유민이 된 인물로 기원후 50~59년(혹은 60년)에 유다 총독으로 지냈다고 하지요. 편지 내용은 ①바오로가 유다인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할 뻔했는데 그가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 천인대장인 자신이 직접 개입해 구출했고 ②유다인들이 무슨 죄목으로 바오로를 단죄하는지 알아보려고 최고 의회로 그를 데리고 갔지만 로마 제국이 관여하지 않는 율법과 관련된 시비로 단죄받는 것 외에 사형을 받거나 투옥될 만한 죄가 없음을 알았으며 ③그런데도 바오로를 해치려는 음모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기에 바오로를 총독에게 보내며 ④바오로를 고발한 자들에게도 총독에게 가서 진술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23,26-30) 천인대장의 지시를 받은 군사들은 그날 밤 바오로를 안티파트리스로 데려갑니다.(23,31) 안티파트리스는 예수님 탄생 때 이스라엘 지방 전역을 다스렸던 헤로데 대왕이 그의 아버지 안티파테르를 기리기 위해 이스라엘 중부 비옥한 평야 지대에 세운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카이사리아로 가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안티파트리스는 오늘날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지요. 이튿날 바오로는 기병들에게 인계되고 함께 바오로를 호송했던 다른 군사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진지, 안토니오 성으로 돌아갑니다. 기병들은 바오로를 호송해 카이사리아에 들어가 편지를 총독에게 전달하고 바오로를 인도합니다.(23,31-33) 안티파트리스부터 기병들만 바오로를 호송해 간 것은 이 지역부터는 평지인 데다 비유다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바오로를 죽이려는 유다인들에게 급습을 당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펠릭스 총독은 편지를 읽고 나서 바오로에게 출신지를 묻습니다. 킬리키아 출신이라는 말을 들은 총독은 바오로를 고발한 자들이 도착하면 신문하겠다면서 바오로를 헤로데 궁전에 데리고 가서 지키라고 명령합니다.(23,34-35) 바오로는 로마제국의 소아시아 지방 속주인 킬리키아의 수도 타르수스 출신이어서 킬리키아 출신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헤로데 궁전은 헤로데 대왕이 지은 궁전인데, 당시에는 유다 총독의 관저로 쓰였다고 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음모에 가담한 사람이 마흔 명이 넘습니다. 그 음모 계획을 바오로의 조카가 듣고서 바오로에게 전하고 바오로는 이를 천인대장에게 알립니다.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총독에게 보내기로 하고 500명 가까운 군사를 보내어 바오로를 호송하게 합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이틀 사이에 벌어집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볼 거리들이 있습니다. 우선, 바오로가 로마 시민이기는 하지만 로마 출신이 아니라 제국의 속주 출신인 유다인입니다. 그 한 사람을 호송하기 위해 수많은 군사를 보낸 천인대장의 처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또 바오로는 자신을 죽이려는 유다인들의 음모를 잘 알면서도 로마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 곧 황제에게 호소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달린 위태로운 순간인데도 말입니다. 바오로의 이런 태도는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바오로를 죽이려는 유다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오로에 대한 적개심이 얼마나 컸으면 바오로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하느님께 맹세까지 했을까요? 섬뜩한 광기마저 느끼게 하는 이런 모습이 2000년 전의 일일 따름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4월 12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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