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예언서 - 심판과 구원의 드라마 이제 구약성경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있는 예언서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사야 예언서에서 시작하여 말라키 예언서가 예언서 부분에 속하면서 구약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예언서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성경과 우리가 사용하는 가톨릭 성경은 차이가 있습니다. 정경 목록을 언급할 때, 한 번 이 차이점을 언급하였지만, 짧게 다시 짚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예언서는 여호수아기부터 열왕기 하권까지를 전기 예언서로, 세 권의 대 예언서와 열두 권의 소 예언서를 후기 예언서로 바라보면서 전기와 후기 예언서 모두를 예언서라고 분류합니다. 하지만, 가톨릭의 정경 목록은 예언서를 조금 다르게 바라봅니다. 우리가 예언서라고 지칭하는 책은 히브리어 성경의 후기 예언서에 속하는 작품을 예언서로 바라봅니다. 역사서(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 열왕기 상하)를 제외한 세 권의 대 예언서(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와 열두 권의 소 예언서(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카서, 나훔서, 하바쿡서, 스바니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라키서)만을 예언서라고 분류합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히브리어 성경에서 성문서에 속하는 애가와 다니엘서와 칠십인역 성경에만 들어가 있는 바룩서가 예언서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우리 성경에서 예언서는 열여덟 권의 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앞에 다가올 일들을 미리 알려준다는 의미의 “예언(豫言)”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구약에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미리 예언된 말씀-임마누엘 탄생 예고(이사 7,14), 고난받는 종의 노래(이사 42,1-7; 49,1-7; 50,4-11; 52,13-53,12)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기에 예언서(豫言書)라는 명칭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는 거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사람에게 맡기셨다는 ‘예언(預言)’의 의미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두 가지 의미 속에서 예언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언서에는 하느님 말씀이 사람들에게,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서 다르게 전달됩니다. 백성이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주님 보시기에 거스르는 짓을 저지르면 심판과 고발의 말씀을, 백성이 이방 민족의 침입을 받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위로와 구원의 말씀이 전달됩니다. 이러한 말씀을 전달하는 전달자를 우리는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구약성경 안에서 많은 이들이 예언자로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언자들은 모세, 엘리야, 엘리사, 나탄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세서, 엘리야서, 엘리사서, 나탄서라는 예언서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분명 예언자로 활동은 하였지만, 자신이 선포한 내용을 따로 기록하여 예언서의 형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예언자를 ‘활동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언서라는 형식으로 자신의 선포 내용과 활약을 남겨 놓은 예언자들을 ‘저술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저술 예언자들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느님께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술 예언자들의 활동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활동 시기의 기준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년)를 삼습니다. 그러므로 유배를 중심으로 전·중·후로 예언서를 분류하고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예언서들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예언하였을 뿐 아니라, 예언서 가운데 유일하게 유배 시기 이전과, 유배 중, 그리고 유배 이후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는 이사야 예언서를 간략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예언서를 만나는 가운데 우리에게 구원과 희망의 말씀도 듣게 되지만,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하느님의 경고 말씀을 듣게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듣고도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아서 심판을 면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을 닮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회심의 기회로 삼는다면, 그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구원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2020년 4월 19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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