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벳자타 못가에서 병자를 고치시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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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복선 | 작성일2013-07-01 | 조회수1,431 | 추천수1 | 신고 |
저의 경우, 전에는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잘 안되는 구절을 만나면 ‘나중에 알게 되겠지.’ 하며 그냥 넘겨 버리고 말았는데, 요즘은 교우님들께서 올려주시면 공통된 주제로 같이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게 느껴져서 그 주제로 성경을 이곳저곳 찾아보고 묵상하면서 그 뜻을 새롭게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벳자타 병자에 대한 예화에 대해서도 전에 궁금해 했던 부분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성경묵상을 해보았고 그것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 이삼용님께서 제기해 주신 주제: 요한 5,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이곳에 다른 분이 이미 질문을 했던 구절인데, 동일한 질문을 다시 드려봅니다.병고침을 받은 중풍병자가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린 것"이 과연 밀고행위(?)나 "배은망덕"이라고 까지 해야 될까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면 몰라도 ~~~! ------------------------------- ◎ 요한 5,15 말씀의 앞뒤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요한 5,5-18을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요한5,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 예수님께서는 서른여덟 해씩이나 낫기만을 고대하면서 누워있는 병자를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묻습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그 병자는 ‘예’, ‘아니오’ 로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이 여지껏 알고 있던 치유 방법인, ‘물이 출렁거릴 때 못 속에 먼저 들어가는 이가 낫는 경쟁 방식’을 예수님께 설명하면서, 자기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므로 자기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먼저 들어가서 자기는 낫기 어려운 상황임을 호소합니다. 그런 병자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한5,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 밑줄친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 마르코 복음에서 카파르나움의 중풍병자를 치유해주시는 장면에서도 나옵니다. 마르코 2,9-11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 위의 두 복음을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마르코 2,9/ 요한 5,8을 비교해 봅니다. 마르2,9 Which is easier, to say to the paralytic,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Rise, pick up your mat and walk'? 요한5,8 Jesus said to him, "Rise, take up your mat, and walk." ▶ 요한복음의 벳자타 병자에게 하신 말씀과 마르코복음의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이 똑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5,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 위의 마르코 복음을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은 벳자타 병자에게도 카파르나움의 중풍병자에게 그러셨듯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으로 육체적인 병뿐만 아니라, 죄까지도 용서하여 주시어, ‘온전히 건강하게’ 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들것을 들고 걸어가는 그 사람에게 유다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요한5,10을 한글과 영어성경에서 찾아보면, 요한5,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0 So the Jews said to the man who was cured, "It is the sabbath, and it is not lawful for you to carry your mat." ▶ 유다인들이 그 병자에게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라고 했다는 말은 ‘단순히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을 넘어서, 안식일날 들것을 들고 가는 것이 ‘안식일법에 저촉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제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not lawful) 요한5,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 벳자타 병자는 안식일날 ‘자신의 들것’을 들고 걸어간 것은, 자기에게 ‘들것을 들고 가도록 시킨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그 병자는 자신을 온전히 고쳐주신 분이 자기의 육신과 영혼을 치유해주시는 ‘메시아’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알아보았다면 다음과 같이 했을 것입니다. 루카17,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 유다인들은 ‘병이 낫게 된 사실이나 그 병자를 건강하게 해주신 분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안식일법을 어기게 시킨 그 사람’이 누군가가 더 중요했고, 누가 그걸 들고 걸어가라 시켰는지 벳자타 병자를 추궁합니다.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 예수님은 그 병자를 다시 만나셨을 때, 재차 그가 건강하게 되었음을 -몸의 치유뿐만 아니라 죄도 용서 받았음을- 선언하시고, 또 다시 죄를 지어 죄의 올가미에 빠지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고 당부하십니다. 요한5,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 그러나 그 병자의 관심은 자기가 온전하게 병이 나았다는 것보다도, 안식일법을 저촉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인 ‘너의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라고 시킨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야 안식일법을 어긴 것이 자기 탓이 아닌게 되고, 유다백성에게서 잘려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탈출기31,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다. 이날을 더럽히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이날에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제 백성 가운데에서 잘려 나갈 것이다. ▶ 그 병자는 유다인에게 가서, 자기로 하여금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자신이 들것을 들고 가도록 시킨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립니다. ▶ 유다인들은 그 병자의 제보로, 그러한 일을 안식일에 하셨다고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요한5,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 안식일에 대한 유다인과 예수님의 인식 차이는 구약의 탈출기와 신약의 마태오 복음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구약에서는 안식일에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제 백성 가운데에서 잘려 나갈 것이며, 누구나 사형을 당한다고 규정합니다. 탈출기 31,14-16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다. 이날을 더럽히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이날에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제 백성 가운데에서 잘려 나갈 것이다. 15 엿새 동안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렛날은 안식일, 주님을 위한 거룩한 안식의 날이니, 이 안식일에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사형을 받아야 한다. 1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대대로 안식일을 영원한 계약으로 삼아, 이 안식일을 지켜 나가야 한다. ▶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셨고,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고 선포하십니다. 마태오 12,5-12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9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자리를 옮겨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10 마침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어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을 잡아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니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
▶ 유다인들은 안식일날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쉼’으로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여겼으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의미를 ‘사람을 살리는 좋은 일은 해도 된다’고 그 지평을 더 넓히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유다인 그들도 자기네 양이 구덩이에 빠질 경우 잡아 끌어내듯이, 사람이 양보다 더 귀하므로 병마로부터 구해준다는게 죄가 될 수 없다는 생명 존중 정신을 말씀하십니다. 요한5,1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예수님은 안식일날에도 사람을 고쳐 주시는 일을 통해, 하느님께서도 ‘사람 살리는 일을 하시는 일은 쉼 없이 하신다는 사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을 설파하시지만, 5,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 ‘사람’보다 ‘율법’을 더 소중하게 여기던 유다인들의 눈에는 안식일을 어기는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일 뿐, 사람을 건강하게 살리시는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본질’은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형을 처해야 할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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