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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62: 아그리파스 임금 앞에서 변론하다(사도 26,1-3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03 조회수7,416 추천수0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62) 아그리파스 임금 앞에서 변론하다(사도 26,1-32)


아그리파스 임금 앞에서 주님 부활에 대한 믿음 전하다

 

 

- 바오로는 아그리파스 임금 앞에서 나자렛 예수를 박해했던 자신이 어떻게 회심을 해서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됐는지를 변론한다. 그림은 카라바조 작,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말에 떨어지는 사울.

 

 

카이사리아의 페스투스 총독 관저에서 다시 법정에 서게 된 바오로는 쇠사슬을 찬 채 아그리파스 임금 앞에서 변론을 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오로의 변론은 예루살렘의 로마 군대 진지 층계에서 한 변론(22,1-21), 카이사리아의 펠릭스 총독 앞에서 한 변론(24,10-21)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학자들은 이 세 번째 변론이 가장 잘 짜여 있다고 봅니다.

 

 

인사(26,1-3)

 

아그리파스 임금이 바오로에게 이야기해 보라고 말하자 바오로가 손을 펴들고 나서 변론을 시작합니다.(26,1) 손을 펴드는 것은 연사들이 연설을 시작할 때 하는 몸짓이기도 합니다만, 사슬에 묶인(26,29 참조) 바오로가 청중에게 인사하는 몸짓일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는 아그리파스 임금을 “유다인들의 모든 관습과 문제를 알고 있는 분”이라고 부르면서 그 앞에서 변론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밝힙니다.(26,2-3) 이것은 단순한 인사치레라기보다는 실제로 헤로데 가문의 임금인 아그리파스가 유다인의 관습과 문제를 잘 안다는 것을 바오로 자신이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엄격한 바리사이파 사람(26,4-8)

 

인사에 이어 바오로는 자신의 출신을 이야기합니다. 예루살렘 로마 군대의 진지 앞에서 한 변론에서는 자신이 로마 제국 속주인 킬리키아의 수도 타르수스 출신으로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소개했지만(22,3), 여기에선 모든 유다인이 자신이 예루살렘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유다교에서도 가장 엄격한 바리사이파 사람으로 살아왔음을 알고 있다고 밝힙니다.(26,4-5) 이를 통해 바오로는 자신을 고발하는 유다인들과 자신이 같은 뿌리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바오로는 이제 자신이 재판을 받고 있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에 대한 희망 때문에”, 곧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을 다시 일으키신다는” 부활에 대한 믿음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26,7-8) 그런데 이 부활 신앙은 유다교 안에서도 달랐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만,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도 영적 존재도 없다고 여겼습니다.(23,6-8 참조)

 

 

박해와 회심(26,8-18)

 

이제 바오로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이름을 반대하여 박해했던 일과 어떻게 해서 회심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수석 사제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성도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를 감옥에 가두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처형할 때에도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힙니다.(26,10) 바오로의 이 말로 볼 때 스테파노의 처형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로 스테파노 외에 다른 신자들도 희생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바오로는 “자주 회당마다 다니며 그들에게 형벌을 주어 예수님을 모독하도록 강요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격분한 나머지 나라 밖 여러 고을까지 그들을 쫓아갔다”고까지 말합니다.(26.11) 이 말은 ‘새로운 길’을 따르는 그리스도 신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반감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뿐 아니라 바오로가 다마스쿠스로 가기 전에도 박해를 피해 흩어진 신자들을 쫓아 이스라엘 경계 밖으로도 다녔음을 알게 해줍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이렇게 격렬하게 신자들을 박해했음을 밝히고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어떻게 회심하게 됐는지를 설명합니다.(26,12-18) 사도행전에서 바오로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는 세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9장 1절에서 19절까지인데, 사도행전 저자가 제3자인 관찰자가 되어 객관적인 관점에서 회심 이야기를 전합니다. 두 번째는 22장 6절에서 16절까지로, 바오로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로마 군대 진지로 올라가는 층계에 서서 자신의 입으로 직접 회심 사건을 설명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현재의 자리인데, 첫 두 번의 회심 이야기에서보다 회심 사건 당시의 환시 내용이 더 자세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바오로에게 하신 “뾰족한 막대기를 차면 너만 아프다”라는 말씀(26,14ㄴ)은 첫 두 번의 회심 이야기에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 문화에서 유래하는 격언으로, 반항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또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니아스와 나눈 이야기가, 22장에서는 하나니아스가 바오로에게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곳 26장에서는 하나니아스에 대한 언급은 없이 예수님께서 바오로에게 나타나신 목적을 바오로에게 직접 설명하시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 내용은 ‘바오로가 예수님의 종이자 증인으로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른 민족들에게 파견될 것인데,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와,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고 성도들 곧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상속 재산을 받게 하려는 것’(26,18)입니다.

 

 

재판에 대한 변론과 결과 (26,19-32)

 

자신의 회심 사건을 이야기하고 난 바오로는 회심 이후의 활동을 간략히 전하면서 재판을 받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과 다른 민족들에게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선포했는데 그 때문에 유다인들에게 살해의 위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 자리에 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오로는 “예언자들과 모세가 앞으로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서 자기가 선포한 한 내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곧 메시아께서 고난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첫 번째 분으로서 이 백성과 다른 민족들에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26,23)

 

바오로는 이 말을 통해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가 유다인들이 믿는 구약의 예언과 상충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구약의 약속이 실현됐음을 증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이 나자렛 예수님에게서 실현됐다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선포하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바오로의 변론이 끝나자 페스투스 총독은 바오로에게 공부를 많이 해서 미쳤다고 말했지만 함께 있던 사람들은 바오로가 사형을 받거나 투옥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인정합니다. 아그리파스 임금은 페스투스 총독에게 “저 사람이 황제께 상소하지 않았으면 풀려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26,32) 하고 바오로의 무죄를 확인합니다.

 

 

생각해봅시다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밀레토스에서 에페소의 원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20,24)

 

“나는 임금님만이 아니라 내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이 이 사슬만 빼고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26,29) 바오로가 변론 마지막에 ‘당신은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게 만들겠군’ 하고 말한 아그리파스 임금에게 한 답변입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 유다인들에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여곡절 끝에 카이사리아로 내려와 2년이나 감옥에 갇혀 지내고 나서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바오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의 이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오로의 삶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성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문하게 됩니다. 신자로서 내가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가.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5월 3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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