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뭐라꼬예?] 아브라함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과 계약 아브라함에게 큰 상을 약속하시는 하느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창세 15,1) 아브람은 큰상을 주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환시를 통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지금 내 아내가 낳은 자식이 없어 내가 가진 전 재산을 종에게 물려주게 되었는데, 아무리 큰 상을 받아본들 그것이 기뻐할 일인가?’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즉 아브람은 친아들이 없어 자신의 종 가운데 한명에게 법적 상속자의 지위를 주고자 하는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를 한탄한 것이지요. 이에 하느님은 아브람의 몸에서 나온 아이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하시고,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여주며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창세 15,5) 창세기 15장에서 전하는 하느님의 이 약속은 이미 12장에서 아브람이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을 때 들은 약속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2절) 그렇지만 아브람에게 내리실 하느님의 축복은 바로 내려지거나 때가 되면 쉽게 이루어질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이 그야말로 힘들 고도 힘든 시련의 때를 거쳐야만 이루어질 축복을 미리부터 예고하는 약속이었던 것이지요. 시련 중에도 계속되는 하느님의 축복 아브람의 삶을 돌아봅시다. 그는 일흔 다섯의 나이로 5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곳으로 향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지방에 겨우 이르렀지만 그곳에 심한 기근이 들어 다시 이집트로 가서 ‘나그네살이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아내 사라이를 누이라고 속였고, 그를 파라오의 아내로 삼게까지 하였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여인인 아내를 팔아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는 술수를 쓴 것이지만, 그런 만큼 견뎌야 했던 수치도 대단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의 도우심은 계속되었다고 창세기는 전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였다.”(창세 13,2)고 하는 창세기의 표현이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물질적인 축복을 헤아리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어려운 일들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하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올라간 아브람에게 하느님은 또 축복의 말씀을 하셨지요.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을, 또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아라.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내가 너의 후손을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이니,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자라야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창세 13, 14-16) 우리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약속의 말씀이 훗날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서 현실의 축복이 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바벨탑의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뿔뿔이 흩어졌던 세상 사람들이 아브라함 안에서 하느님 축복의 약속을 듣게 된 것처럼, 우리도 온갖 고난을 이겨낸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하느님 축복에 대한 희망을 놓지 말았으면 합니다. 시련은 잠시이나 기쁨은 영원할 것이니까요!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의 내용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창세 15,7)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자,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을 가지고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삼년 된 암 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 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창세 15,9) 하느님께서 명하신 대로 아브람은 그 모든 짐승들을 가져왔고, 날짐승들을 제외한 짐승들을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습니다. 그러고서는 그들 위로 날아드는 맹금들을 쫓아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쏟아지는 잠결에 공포와 짙은 암흑에 휩싸인 아브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아브람의 후손이 장차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사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게 될 것이지만, 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곳을 나오게 될 것이며, 아브람은 장수를 누리다가 평화로이 조상들에게 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쪼개진 짐승들 사이를 지나가신 하느님 짐승의 피와 주검이라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맺어진 계약은 계속 인상 깊게 전개 됩니다. 창세기는 마치 중계방송을 하는 듯 이렇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15,17-18) 화덕이 연기를 뿜고 불이 타오르며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그런 행동을 통해서 아브람과 직접 계약을 맺으셨다는 말이지요. 이는 곧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다면, 당신도 그 짐승들처럼 두 동강이 나도 좋다는, 비장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짐승들 사이로 아브람을 지나가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충성을 다 하지 않으면 아브람이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계약의 제사 아브람과 맺으신 계약에서 보이신 하느님의 행동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친 피의 제사로 맺으신 신약의 계약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새로운 계약을 맺는 제사를 인간을 위해 바치시되 당신 친히 제관과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봉헌하시는 제사가 재현되는 것이 오늘날의 미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를 통해 우리 구원을 위한 계약이 날마다 새롭게 맺어지고 있음에 감사하며 내 자신을 봉헌하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에 이어 그 후손으로 계속된 하느님의 약속,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과 맺어진 계약은 하느님의 비장한 결의로 이루어진 것이고, 이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바치신 피의 제사를 통해 신약의 계약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약의 계약을 기반으로 세워진 교회의 일원입니다. 그렇다면 죽을 각오로 약속에 대한 이행을 강조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우리도 결의에 찬 신뢰와 순명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변함없는 하느님의 약속을 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쉽게 변하는 나약한 우리들이 되지 않도록 레지오 정신에 더 충실하길 다짐합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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