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4) 표류 끝에 몰타 섬에서 지낸 후 로마로(사도 27,27-28,16)
그리스도 사랑과 희망 전하며 항해를 마치다 - 아드리아 해에서 14일이나 표류하던 끝에 바오로 사도가 탄 배는 몰타 앞바다에서 파선하고 배에 탄 사람들은 무사히 몰타 섬에 도착해 겨울을 지낸 후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다. 지도는 바오로의 로마 여행 경로. 배가 크레타 섬 남쪽에서 세찬 폭풍을 만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바오로 사도가 나서서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웁니다. 배는 좌초하지만, 사람들은 희생자 없이 모두 뭍으로 올라오고, 바오로는 마침내 로마에 도착합니다. 바오로의 격려(27,21-38) 절망적인 상황이어서 사람들은 모두 식욕마저 잃었습니다. 그때에 바오로가 그들 가운데에 서서 말합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크레타 섬을 떠나지 않았으면 피해와 손실을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지만, 이어 “용기를 내십시오. 배만 잃을 뿐…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용기를 북돋웁니다. 그러고는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사실 나의 주님이시고 또 내가 섬기는 하느님의 천사가 지난밤에 나에게 와서 ‘바오로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황제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도 너에게 맡기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27,24) 바오로는 거듭 용기를 북돋우며 배의 운명에 대해 예언합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어떤 섬에 좌초하게 되어 있습니다.”(27,25-26) 배가 아드리아 해에서 떠밀려 다닌 지 14일째 되는 밤 자정 무렵, 선원들은 배가 육지에 다가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추를 내려 재 보니 스무 길, 열다섯 길로 자꾸 얕아집니다. 사람들은 배가 암초에 좌초할까 두려워 배 뒤쪽에서 닻을 네 개나 내려놓고 날이 밝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배 앞쪽에 있던 선원들은 닻을 내린다면서 보조선을 바다에 내렸습니다. 배에서 달아날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알아챈 바오로는 백인대장과 군사들에게 “저 사람들(선원들)이 배에 그대로 남아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살아남지 못합니다”라고 충고했고, 군사들은 배에 밧줄을 끊어 보조선을 파도치는 바다에 떠내려 보냅니다.(27,27-32) 사람들은 폭풍에 시달리며 열나흘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한 터라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계속 권합니다. 단순히 음식을 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머리카락 하나 잃지 않을 것”이라며 희망을 불러 일으킵니다.(27,33-34) 그러고 나서 바오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빵을 들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다음 떼어서 먹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용기를 내어 음식을 먹었고, 이백칠십육 명이나 되는 사람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밀을 바다에 버립니다.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27,35-38) 바오로의 이런 행동은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성찬례를 상기시킵니다. 또 배에 탄 사람들 모두 배불리 먹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떠올리게 합니다. 배가 부서지다(27,39-44) 날이 밝았습니다. 해변이 평평한 작은 만이 보이자 사람들은 배를 그 해변에 대려고 시도합니다. 그렇지만 배는 물 밑 모래 언덕에 빠져 박히고 말았습니다. 배 앞머리는 꼼짝 않고 뒷부분은 파도에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자 군사들은 수인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모두 죽이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백인대장은 바오로를 살려두고 싶어서 그 계획을 제지하고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물에 뛰어 내려 뭍으로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널빤지나 부서진 배 조각을 타고 가게 합니다. 그래서 모두 무사히 뭍으로 올라옵니다. ‘아무도 머리카락 하나 잃지 않을 것’이라는 바오로의 말대로 된 것입니다. 몰타 섬에서 지내다(28,1-10) 사람들은 뭍으로 나온 뒤에야 그곳이 몰타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몰타의 원주민들은 비가 내리고 추워지자 불을 피워놓고 난파된 사람들을 맞이할 만큼 각별한 인정을 베풉니다. 그런데 바오로가 땔감을 모아 불 속에 넣자 독사 한 마리가 튀어나와 바오로의 손에 달라붙었고, 바오로는 바로 뱀을 불 속에 떨어뜨렸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오로가 살인자여서 정의의 여신에게 벌을 받아 곧 독이 퍼져 몸이 부어 죽을 것이라고 여겼으나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자 이제는 바오로를 신으로 여깁니다.(28,1-6) 그 근처에 섬의 수령인 푸블리우스의 땅이 있었습니다. 그가 ‘우리’로 표현한 바오로 일행을 손님으로 맞아들여 3일 동안 극진히 대접합니다. 마침 푸블리우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었는데 바오로가 “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28,8) 고쳐줍니다. 사도행전에서 안수는 공동체의 직무를 맡길 때(6,6), 성령을 베풀 때(8,17; 19,6), 병자를 고칠 때(9,12.17), 그리고 사명 수행을 위한 파견 때에(13,3)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자 다른 병자들이 왔고 바오로는 그들도 고쳐줍니다. 원주민들은 큰 경의를 표하고 바오로 일행이 배를 타고 떠날 때는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줍니다.(28,7-10) - 로마 테클라 카타콤베의 바오로 사도 프레스코화. 몰타에서 로마로(28,11-16) 몰타 섬에서 석 달을 지낸 후, 일행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납니다. 이 배는 좌초된 배를 고친 것이 아니라 그 섬에서 겨울을 난 또 다른 알렉산드리아 배로, 디오스쿠로이의 모상이 새겨진 배였습니다.(28,11) 디오스쿠로이는 제우스 신의 쌍둥이 아들로 이집트에서는 선원들의 수호신으로 널리 숭배됐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몰타 섬을 떠났을 때가 겨울이 끝나는 2월이나 3월쯤이라고 추정합니다. 배는 이탈리아 반도 남쪽 시칠리아 섬의 동쪽 항구 도시인 시라쿠사에 도착해 사흘을 머물렀다가 다시 출발해 이탈리아 반도 최남단의 항구 레기움에 도착합니다. 하루 후 남풍이 불자 다시 출항해 이틀 만에 약 350㎞ 북쪽에 있는 항구도시 푸테올리에 도착합니다. 나폴리 만에 있는 이 항구도시에서 바오로 일행은 “형제들”(28,14) 곧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그들의 청으로 이레 동안 머물고는 마침내 로마에 도착합니다.(28,12-14) 푸테올리에서 로마까지는 약 200㎞로 잘 걸으면 닷새면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로마에서는 형제들이 소문을 듣고 아피우스 광장과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바오로 일행을 맞으러 옵니다. 그들을 본 바오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습니다.(28,15) 아피우스 광장은 로마에서 남쪽으로 약 65㎞, ‘세 주막’을 뜻하는 트레스 타베르네는 약 49㎞ 떨어진 곳입니다. 로마의 그리스도 신자들이 바오로의 소문을 듣고 하룻길 이상 걸어와 맞아준 것입니다. 바오로는 로마에서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28,16) 수인치고는 이례적으로 자유로운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바오로가 탄 배가 거센 폭풍에 시달리면서 열나흘이나 표류해 배에 탄 사람 모두 절망에 빠졌지만, 바오로만은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바오로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재판을 받으러 가는 처지임에도 이렇듯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믿음만 지닌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데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을 뿐 아니라 용기 있게 믿음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바오로.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5월 17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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