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들과 오늘 우리] 하느님 모습 인간 창조 이야기 창세기는 두 가지 인간 창조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는 창조 엿샛날에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야기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1,26-27). 두 번째는,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생명체가 되게 하신 사람(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하와)를 만들어 주신 이야기다(2,7-25 참조). 두 번째 이야기가 남자와 여자의 창조를 시간 순서로 구분하고 문화적 · 사회적 남녀(man and woman)를 구분하였다면,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남녀를 시간 차이 없이 동시에 창조하되, 성(sex), 곧 생물학적 차이로 구분하였다(male and female). 이로써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정체성과, 협력자의 관계로 맺어진 여자와 남자에 대해 알 수 있다. 유혹과 거절, 그리고 복수 인간은 유혹이 닥칠 때 그것을 물리치기도 하고 항복하거나 타협하기도 한다. 이 나약함은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지만, 성경에는 불리한 위치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향한 유혹을 떨쳐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타인을 유혹하거나 거절하는 사람에게 복수하는 사람도 있다. 요셉 구약 성경에서 유혹을 물리친 인물로 이스라엘 성조 요셉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이스마엘인들에게 팔려 간 요셉을 이집트 파라오의 경호대장인 포티파르가 샀다(창세 37장). 포티파르의 종이 된 요셉은 주인의 눈에 들어 그 집의 재산 관리인이 되었는데, 요셉의 용모에 마음을 뺏긴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였다.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길을 보내며 ‘나와 함께 자요!’ 하고 말하였다”(39,7). 하지만 요셉은 주인을 배신하는 악을 저지를 수 없다며 그 요구를 거절하였다. 여자는 계속 요셉을 유혹하다가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오히려 그가 자기를 희롱하려 했다고 남편에게 거짓을 고했다. 그 일로 감옥에 갇힌 요셉은 임금의 죄수들과 함께 지내며 꿈을 풀이해 주었고, 결국 파라오의 꿈까지 풀이하여 이집트의 재상이 되었다. 성경 저자는 이 설화를, 이스라엘을 구하시려는 하느님의 큰 그림 안의 한 부분으로 그려 놓았다. 요셉은 뒷날,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형들에게 말한다.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45,5). 수산나 유혹을 물리친 대가로 곤경을 겪는 또 다른 인물은 수산나이다. 이 이야기는 다니엘서 13장에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에는 없고, 그리스어 번역본에서 덧붙이진 부분에 나온다. 수산나는 요야킴이라는 부유한 히브리 사람과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요야킴의 저택은 넓은 정원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유다인들이 그를 존경하여 자주 찾아오곤 하였고, 재판관으로 임명된 두 원로도 요야킴의 집에 머물며 일을 하고 있었다. 수산나를 눈여겨보던 두 원로는 수산나에 대한 음욕을 숨기고 있다가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혼자 있는 수산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찾아보기로” 한다. 마침내 자기 집 정원에서 목욕하는 수산나를 훔쳐보다가 욕정에 사로잡힌 그들은 수산나에게 달려들어 수치스러운 말로 위협하며 자신들의 요구에 따르도록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그녀가 어떤 젊은이와 정을 통했다고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겠다며 협박했다. 남편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수산나가 소리 질러 하인들이 달려왔지만, 그녀는 사악한 두 재판관이 짜 놓은 올가미에 빠지고 만다. 그들은 음흉한 계책대로 수산나를 두고 거짓 종언을 했고, 사람들은 백성의 원로이며 재판관인 그들의 말을 믿어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신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다니엘이라는 젊은이를 보내 주신다. 다니엘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심판하신다.’라는 뜻으로, 그의 지혜로운 재판으로 말미암아 수산나는 두 재판관의 사악한 계책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대칭적으로 교차하는 두 이야기 요셉과 수산나의 이야기에서 공통된 주제는 유혹과 거절과 복수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려고 타인을 유혹하고 그것이 거절당하자 복수를 통해 공고하게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구도이다. 그리고 가해자는 모두 우월한 위치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이야기가 서로 대칭적으로 교차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사건에서 가해자는 여자이고 피해자가 남자인데, 두 번째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남자이고 피해자가 여자다. 또, 궁극적으로 두 사건을 지혜롭게 푸는 이들은 모두 남자이고, 두 인물이 유사하게 묘사된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요셉은 꿈을 풀이할 줄 알고 유혹도 물리칠 수 있는 현자이며 정치와 경제에 수완이 있는 사람으로, 하느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강한 종교적 신념을 지녀 악에서 선을 끌어낼 정도로 하느님의 섭리를 굳게 믿는 인물이다. 다니엘 또한 꿈을 풀이하는 능력이 있었고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현자로, 선을 위한 하느님의 대리자로 활약한다. 이와 달리 두 사건에서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여자는 악인이거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약자로 묘사되는데, 남녀에 대한 사회 문화적 이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인격주의적 규범 요한 바오로 2세는 ‘어떤 인격이 네 행위의 목적이 될 때마다. 그를 목적의 수단이나 도구로 대해서는 안 되며, 그 또한 고유한 인격적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적어도 그러한 목적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격주의적 규범을 천명하였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를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말씀이다. 요셉을 유혹한 여자나 수산나를 유혹하며 협박하고 자신들의 유혹이 거절당하자 복수를 피하는 이들은, 상대방을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채워 주는 존재로만 인식한 것이다. 하느님 모습 인류 역사상 그리고 오늘날 벌어지는 성폭력이나 성 착취, 성의 상품화는 모두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는 데에서 비롯한다. 창조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가 상호 보완적인 존재로 협력자가 되게 하셨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모습’이 반영된 존재들이다. 타인을 자신의 삶에 필요한 소모품으로 간주하고 힘으로 억누르거나 그를 조종하고 이용하는 것은 죄이다. 바오로 사도는 잘못된 욕망에 굴복한 불륜이란 자신의 몸을 남용하는 죄라고 말한다(1코린 6,18 참조), 하느님의 모습인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 책임이 있다. * 강선남 헬레나 -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신약학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교황 프란치스코: 새 시대의 응답자」, 「성경의 인물들」, 「교부들의 성경 주해, 탈출기-신명기」 등의 역서를 냈다. [경향잡지, 2020년 9월호, 강선남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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