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창조의 최고 걸작품 - 사람과 안식일 창세기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창조 이야기가 1장과 2장에서 연속되어 나타납니다. 1장에서는 6일간의 창조 이야기가 분류별로 섬세하게 나타나지만 2장의 창조 이야기는 ‘땅’에 더 집중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두 이야기는 창조의 최고 목표가 인간과 안식일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리듬을 지니고 있습니다. 7일이라는 시간 안에서 반복되는 어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와 하느님께서 하시는 열 번의 창조적 말씀, 그리고 이어 일곱 번 되풀이 되는 “하시자 그렇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등의 규칙적인 리듬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섯째 날부터는 목소리의 톤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의외성은 하느님께서 살아있는 생물들을 창조하시는 말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억양의 변화는 “우글거려라.”, “날아다녀라.’, ‘번식하고 번성하여라.”, “가득 채워라.” 하시며 역동성이 가득한 어조로 말씀하시는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인간을 창조하시며 정점에 다다릅니다. 인간을 만드실 때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1,26)하시며 지금까지는 삼인칭으로 대표되던 말씀이 ‘우리’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인격적 일인칭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창조가 다른 생물들과의 창조와는 차별되는 특별함을 드러내는 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여섯째 날 울려 퍼지는 창조적 말씀의 소리는 인간을 하느님과 “비슷하게”,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셨다.”(1,27)는 것을 선언하는 목소리요 창조의 절정을 표현하는 목소리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제 종류대로” 창조되었던 반면 인간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흙의 형상이었던 인간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을 드러내 주는 특별한 존재로 탄생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창조가 이루어지던 여섯째 날의 내면적 역동성은 창조 이야기의 단조로운 리듬을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인간을 빚을 때 억양의 변화를 보였던 창조의 말씀은 안식일을 설명할 때 역시 연속적 리듬의 틀을 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시니 좋았다.”라는 평가의 말씀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반복되는 표현들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조로운 리듬을 반복하는 대신 성경은 세 번1)이나 거듭되는 반복으로 거룩한 날이며 안식의 날인 ‘이렛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창조의 최고 걸작품인 사람의 창조에 대하여 말할 때도 똑같이 세 번2)의 반복으로 강조한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2,7) “사람의 코에 생명의 숨을 넣으셨다.”라고 할 때의 숨은 ‘니쉬마 ’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니쉬마’는 성경 전체에서 24회 사용되고 있는데 창세기에 2회 등장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노아 시절 홍수로 인하여 모든 생명, 곧 “숨이 붙어 있는 것들은 모두 죽었다.”라고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7,22)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숨’, 하느님의 ‘영’을 일컫는 히브리어 단어는 ‘루아흐 ’입니다. ‘루아흐’는 하느님, 사람, 동물, 거짓 신들, 우상, 기상학적 현상으로서의 바람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되고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살아나도록 만든 하느님의 숨결’을 나타낼 때에는 ‘루아흐’가 아니라 ‘니쉬마’를 사용하고 또 이 단어를 사람에게만 적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출처가 흙먼지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흙만으로의 존재가 아닌 하느님의 기운이 서려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코에 숨(니쉬마)을 불어넣으심’으로써 사람은 하느님과 끊을 수 없는 관계, 곧 호흡기로 연결된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동물을 만드실 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창조물의 우월한 지위를 갖는 이유가 되고 또한 하느님 손수 빚으신 귀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사람은 매순간 호흡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은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며 더불어 하느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이어갈 때 그분 생명의 기운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니쉬마’의 용어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숨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숨결에서 하느님을 인식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 ‘아담(사람)’의 어원은 흙을 의미하는 ‘아다마’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인간이 흙으로부터 왔으며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땅에 속해 있으며, 땅에 의존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사실 역시 알려줍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땅에 의존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숨결에도 의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긴밀한 의존성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소유권이 온전히 하느님께만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결론적으로 창세기의 저자는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무엇인가 혹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이는 듯이 보입니다. 인간은 흙이라는 물질에 속한 것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숨결로 생명체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창조 이야기는 인간의 존재가 하느님 때문에 특별하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또한 하느님이라는 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하는 의존적 존재라는 것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마다 하느님의 현존이 의식되는 날들이 되시길 빕니다. 1)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2,3)” 2)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1,27) [월간빛, 2021년 2월호,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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