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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바벨탑 이야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02 조회수7,692 추천수0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바벨탑 이야기

 

 

이번에 우리가 순례를 하게 될 곳은 신아르 지방, 곧 바빌론 지역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과는 달리 돌 대신 벽돌을, 진흙 대신 역청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고 있는 현장으로 찾아가고자 합니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11,4) 이것이 바로 그 사람들이 탑을 쌓고자 하는 목적이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사실 창세 11,1-9의 바벨탑 이야기는 왜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온 세상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원인담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락의 첫 구절인 11,1은 “온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고 말하고, 마지막 구절인 11,9은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기 때문이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늘까지 닿는 탑”이란 도시의 수비를 위해 쌓은 탑일 수도 있고, 고대 바빌론의 신전인 지구라트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이것은 니므롯들이 우상숭배를 목적으로 쌓은 탑입니다. 요셉푸스는 “니므롯은 … 하느님이 또 한 번 땅을 홍수에 잠기게 하시면 복수하겠다고 위협했다. 물이 올라올 수 없을 만큼 높은 탑을 쌓아, 홍수 때 멸망한 조상들에 대해 복수하려 했다. … 그렇게 그들은 탑 건설에 착수했으며 … 그 탑은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고 설명합니다(『유다 고대사』 I, iv, 2-3). 

 

그런데 바벨탑을 쌓으려는 그들의 의도(이름을 날리는 것과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에 대한 하느님의 평가는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일 뿐,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였습니다(11,6). “이름을 날리자”는 말은 하느님도 손댈 수 없을 만큼 유명하고 강력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흩어지지 않게 하자”는 말은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강제와 폭압에 의한 획일화 정책, 곧 모든 적수를 물리칠 연대성을 구축하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곧 인간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를 과시함으로써 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시도는 왜 잘못된 것일까요? 또 이 비판은 누구를 겨냥한 것일까요? 바벨탑 이야기는 도시 문화와 인간의 기술에 대한 비판이요, 강대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공격이며, 하느님 없이 이루어지는 일치는 획일과 폭력, 압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바빌론 제국의 힘에 의존하려는 유다인들, 그곳의 문화와 종교에 동화되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버리려는 동료 유다인들에게 던지는 비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탑을 쌓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조처는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11,7).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대화의 막힘, 의사소통의 장애, 관계의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습니다.”(11,8) 이제 각 민족은 이웃 나라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각자 자기들의 탑을 쌓는 일에 골몰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종말론적 전망은 바벨탑 사건의 역전으로 종종 묘사됩니다. 예를 들면 사도 2,7-11에서 성령강림을 통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 간의 소통이 회복되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그리고 묵시 21,22-26에서는 흩어졌던 민족들이 새 예루살렘으로 밀려들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의 참된 안전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모든 민족들의 선을 추구하며 정의를 확립하고 평화를 건설하는 데 있지 않을까요?

 

[2021년 2월 28일 사순 제2주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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