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아브라함의 부르심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아브람의 아버지 테라가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인 칼데아의 우르를 떠나 정착하게 된 하란이라는 곳입니다. 하란은 터키와 시리아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지만 아브람 당대에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상업 도시로서 번성하였고, 또 달의 신인 신Sîn의 숭배지로도 유명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아브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창세 12,1-3 참조). 하느님께서 왜 아브람을 선택하셨는지, 과연 아브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기에 합당한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성경 본문은 침묵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시작이 어떤 인간적인 조건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으며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주도하신 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1). 하느님의 이 요구는 단지 아브람뿐만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개인을 지켜줄 수 있는 공적인 치안 체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부족의 보호 장치를 상실함을 의미하며, 결국 개인은 심각한 안전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이런 요구는 하느님께서 그의 보호처요 피신처가 되심을 신뢰하라는 요구이며, 인간적인 생존 수단에 의존하는 대신 하느님께 의존하라는 초대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길을 떠난 아브람이지만 하느님의 정의와 일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 역시도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또한 부르심의 요구에는 삶의 주도권을 하느님께 드려야 한다는 초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이들만이 하느님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이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삶의 주도권을 절대로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누군지, 또 무엇이 나에게 가장 좋은지를 잘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고, 나에게 진정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알고 계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삶의 주도권을 전지전능하신 분께 맡겨드리고자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땅”(15,18)과 “땅의 먼지처럼”(13,16; 28,14), “하늘의 별들처럼”(15,5; 26,4), “바다의 모래처럼”(32,13) 많은 후손을 주시고, 그에게 복을 내리시며,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과 후손과 축복에 대한 하느님의 삼중 약속은 창세기 설화 안에서 아브람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집니다. 달 신을 믿었던 우상숭배자 아브람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약속을 듣고, 하느님께 대한 신앙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75세에 아내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습니다. 길을 떠나는 아브람 편에서는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석녀였고, 그는 이미 늙었습니다. 그는 반유목민으로서 정착할 수 있는 땅도 갖지 못하였습니다. 아브람의 생애를 요약하면 그는 75세에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으며, 99세에 할례를 받고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으며, 100세에 이사악이 태어났고, 175세에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75세에 길을 떠났다는 것은 그의 중년의 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중반에 하느님을 신뢰하는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한 아브라함을 따라 우리도 길을 나서고자 합니다. 혹시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중요한 것입니까? [2021년 3월 2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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